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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그리워 만든 밀면, 실수로 뽑은 쫄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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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33면

일본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냉면’이라고 써 있는 글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주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육수는 대접의 절반도 안 들어 있고, 그 안엔 쫄면 면발이 담긴 채 고추장양념 비빔장을 얹어 내온 게 아닌가!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이윤화 대표

비빔냉면이라고 하기엔 물이 너무 많고, 물냉면으로선 들이켤 육수가 적고, 쫄면이라 하기에도 뭔가 빠지는 듯한 모양새다. 한국에서 근본 없는 음식이라고 했을텐데 일본 식당에서는 여름 인기 메뉴 중 하나란다.

벼농사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밀가루는 임금님 상이나 잔칫날에 맛보는 귀한 식재료였지만, 한국전쟁 때 미국에서 밀가루 구호품이 대량 들어와 그 용도가 대폭 확대됐다. 피란민이 몰렸던 부산과 그 일대에 유독 면 음식이 발달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원조가 끝난 다음에도 정부는 미국에서 밀을 계속 수입해 쌀보다 저렴하게 시중에 풀었다. 당시 쌀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

부산 출신 사람이 고향 음식을 열거할 때, ‘정통은 아니지만’이라는 뉘앙스가 실리는 대목은 주로 ‘밀면’을 설명할 때다. 평안도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고향의 냉면을 그리워하면서 메밀가루 대신 밀가루를 써서 만들었다는 아류 냉면이 바로 ‘밀면’이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메밀은 흔하고 밀가루가 귀했던 옛날의 평양이라면 오히려 밀면이 임금님 상에까지 올라갔을지도 모르리라.

아류 국수 한 가지를 더 말하면, 인천에서 탄생한 ‘쫄면’이다. 냉면 면발을 뽑던 사출기의 구멍을 잘못 맞추는 실수로 굵고 쫄깃한 면발이 나와 지금의 쫄면이 되었단다. 향수에 젖어 만든 ‘밀면’이든, 실수로 만들어진 ‘쫄면’이든, 모두 한국인의 화끈한 열정만큼 면발이 쫄깃하다는 것이 공통이다.
▶할매가야밀면(오랜 전통의 밀면집)
부산시 중구 남포동2가 17-1·051-246-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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