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파업 유보, 불씨는 여전히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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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한전 노조가 직접 대화의 창구를 열고 전면 파업을 유보하는 데 서로 합의한 것은 사상 초유의 파업으로 생길 엄청난 파장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24일 새벽까지 계속된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조정 과정에서 정부는 한전 노조에 대해 "일단 파업을 유보하고 전력산업 구조개편 문제를 좀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노조가 이를 받아들였다.

당초 한전 노조는 전력 산업 구조 개편이 노사 협의 사안으로 다뤄질 일이 아니고 중노위의 조정안에 합의할 수 없다며 버텼다.

협상이 진행되면서 노조는 "지금 당장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책임있는 정부 고위 당국자'가 나와 대화에 임한다면 24일 전면 파업을 유보할 수 있다"며 다소간 입장 변화를 보였다.

노조의 한 간부는 "파업이 목적이 아닌만큼 성의있는 대화가 이뤄져 파업 등 극단적인 사태를 막을 수 있다면 우리도 언제든지 응할 용의가 있다"며 "대체재도 없는 전기를 끊는 일은 우리도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산업자원부 등 당국도 한전 민영화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나 일단 파업을 보류할수 있다면 노조와의 대화에 응하겠고 직권 중재 회부도 보류할 수 있다며 다소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정부 관계자는 "중재 조정안에 합의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를 놓고 시간을 무작정 끌수는 없는 일"이라며 "파업이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든 한전 노조든 파업 사태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눈총과 그로 인한 부담감을 덜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던 셈이다.

파업은 일시 유보됐으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전력 산업 구조 개편 문제에 대한 양자의 입장 차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노조간 대화의 창구는 열렸지만 정작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 인지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게 현실이다.

정부는 민영화 관련 법률안이 반드시 이번 정기 국회를 통과, 민영화 방안을 조기에 완료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전은 이에 대해 24일의 파업을 유보하지만 국회에서의 관련 법률 통과 추이를 지켜보며 파업 돌입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 내부에서는 한국노총 주관의 `공공연대 행동의 날'인 30일에 철도 부문 등과 함께 파업에 다시 돌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민영화 관련 법률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오는 29일을 기점으로 파업을 다시 결정한다는 복안을 깔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향후 정부의 태도 여하에 따라 파업은 언제든지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성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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