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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퀸’ 유선영의 황소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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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지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유선영(26·정관장) 선수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초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유선영은 “골프가 너무 하고 싶어 반대하는 부모님을 1년이나 설득했다”며 “내가 고집해 여기까지 왔으니 꼭 미국 투어에 가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찬 인상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열아홉 유선영은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만 해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거쳐 미국으로 가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빠른 길을 택했다. 어차피 목표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인 만큼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 뒤 유선영에게서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이 들려 왔다. 2005년 2부 투어를 거쳐 2006년 1부 투어에 데뷔했지만 기대했던 우승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처음 몇 해는 후원사가 없어 로고 없는 모자를 쓰고 대회에 나갔고, 2008년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외로운 투어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선영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는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선수였다. 친구인 서희경·홍란 등이 K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면서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말고 내 골프를 하자고 생각했다. 다른 일은 몰라도 골프에 있어서는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고집 부렸다”고 했다.

 유선영의 고집은 2010년 사이베이스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청야니·신지애 등을 꺾고 우승하며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일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으로 찬란한 꽃을 피웠다.

 유선영의 스타일은 경기 내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3타 차 공동 4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유선영은 청야니·서희경·김인경 등과 우승 경쟁을 펼치면서도 흔들림 없는 경기를 펼쳤다. 16번 홀을 마칠 때까지 일부러 스코어 보드를 보지 않았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김인경과의 연장전에서도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경기에만 몰입했다. 우승컵을 품에 안은 뒤에도 그는 덤덤했다.

 유선영은 “나를 믿고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 준 부모님과 스폰서(정관장)의 믿음이 없었더라면 내 고집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며 “메이저 대회 우승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목표의 시작”이라고 했다. 우승을 차지한 다음 날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집으로 돌아가 평소와 다름없는 훈련 일정을 소화했다. 유선영의 ‘마이 웨이’는 부박한 세태에 ‘황소걸음’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이지연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팜스프링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