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얻은 영웅, 그 바탕은 인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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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1616). 죽고 죽이며, 모략하고 모략을 당하는 일본의 전국(戰國)시대(1467∼1603)를 마감하고 평화의 에도(江戶)시대(1603∼1867)를 연 인물. '울지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린다'는 오다 노부나가, '울지않는 두견새는 울게 만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달리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의 화신.

일본 굴지의 대하 역사물로 평가 받는 야마오카 소하치(1907∼1978)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연말 출판계의 빅 카드 상품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독서 시장에 나왔다.

30대 후반이상의 독자들은 아마 기억할 것이다.지난 70년대 '대망(大望)'이란 제목으로 나와 어쨌거나 중산층의 소장도서 목록 1호 구실을 해왔던 그 도쿠가와를.

◇'대망(大望)'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러나 이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대망'과 여러가지 점에서 많이 다르다는 점이 평가돼야 한다. 3년간의 작업 끝에 총32권중 1차로 7권을 먼저 선보인 이 책은 '대망'이 소홀히 했던 도쿠가와 시대의 인명·지명·관직명·복식·머리모양 등에 이르기까지 당시 일본의 문화를 살려냈고 각 권마다 용어사전을 덧붙이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고 있다.

번역이 이질적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일본 문화의 원형적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업은 일단 성공적으로 보인다.

비교적 큰 투자를 결정했던 솔 출판사 대표 임우기씨는 "기존의 '대망'이 오역(誤譯)과 누락 때문에 원문의 문화적 의미가 축소 왜곡 되었고, 더욱이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 내에서의 역사소설의 지위를 지나치게 처세술 차원으로 속화(俗化)내지 왜곡시켜 이해돼와 아쉬움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그가 새 번역본을 내놓는 배경이 짐작되는 발언이다.

◇연말 출판계의 빅카드

정식 저작권 협약을 거쳤고, 일본 문학관련 번역을 해온 이길진(66)씨의 매끄러운 문체도 이 책을 돋보이게 한다.

연내 계속 출간되며, 내년 1월께 완간 계획. 일본에서 50년대 출간이래 지금까지 1억 수천만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되는 이 책의 새 번역본은 연말 출판계의 빅카드로 꼽히지만, 그런 측면 못지 않게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가감없이 바라보는데, 그만한 세월이 필요했다는 측면도 눈여겨 봐야 할지 모른다는 소회를 갖게한다.

이 책의 시대 배경은 전국시대와 에도시대의 초반부까지다. 이 살육의 전쟁시대 주요 캐릭터는 오다 노부나가(1534∼1582), 토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 도쿠가와 이에야스등이다.

담력과 지략을 뽐내며 천하를 움켜쥐기 위해 이합집산하는 군웅들의 중심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다.

저자는 그를 평화주의자로 그리며, 그의 생명존중 사상이 민심을 얻는 요소였다고 묘사한다. "남을 죽이면 나도 죽임을 당한다. 남을 살리면 나도 삶을 얻는다"라는 도쿠가와의 말에서 전국시대라는 난세의 일반적 논리를 뛰어넘는 그 무엇을 읽을 수 있다.

◇'일본 읽기의 열쇠' 도쿠가와의 시대

도쿠가와 시대는 전국 통일을 바탕으로 일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의 단초를 마련하는 시기며, 이후 오늘 천황제와 자민당 장기집권의 모태를 형성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도쿠가와 시대이지만, 이 시기와 맞물리는 조선시대는 그 역사와 제도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가 경험하지 못했던 막부제라는 일본 특유의 봉건제를 형성한다. 당시 양국에 공통되는 4개의 신분구조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지만, 도쿠가와 시대는 사무라이(士)무사들이 사회를 리드하던 시대였다.

반면 같은 사(士)자를 쓰지만 조선은 선비가 엘리트였다. 따라서 장군(將軍)이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할 지라도, 도쿠가와 시대의 쇼오군이 조선의 왕처럼 실질적 통치자였지만, 이와 달리 조선의 이순신장군과 같은 장군은 왕의 명령을 받는 신하였다. 그래서 일본의 그
'다름'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도쿠가와 시대의 봉건제도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1996)의 '일본정치사상사'(통나무)를 추천한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동시대를 다룬 마루야마의 책은, 도쿠가와 시대에 꽃핀 주자학의 발전과 그 해체과정을 통해 일본의 근대의식의 성장을 설명한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마루야마의 사상사를 읽는 가운데, 근대 일본의 원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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