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4명' 사우디 남성들, 한국 '키봇'에 열광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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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KT 서유열 홈고객부문 사장이 교육용 로봇 키봇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KT]

KT의 교육용 로봇 ‘키봇’이 사우디아라비아 수출길에 오른다. KT 관계자는 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신회사 모바일리와 키봇의 대당 수출 가격과 물량을 놓고 막판 조율 중”이라며 “1만 대 이상 대규모 물량을 놓고 논의 중인데 이르면 이달 안에 선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리는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1위 업체다. 키봇의 첫 수출은 지난해 11월 모바일리 임원 10여 명이 KT와 업무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윤곽이 잡혔다. 당시 방한은 그해 6월 이석채(67) 회장이 스위스에서 열린 ‘통신업체 최고경영자(CEO) 라운드 테이블’ 미팅에서 모바일리 임원들과 업무 협력을 확대하자고 약속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당초 KT는 키봇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모바일리 임원들을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맨 마지막 순서에 끼워 넣을 정도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키봇에 전화를 걸면 키봇이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 주는 장면에서 모바일리 임원들의 박수가 터졌다. “둘째 부인 집, 셋째 부인 집에 키봇을 한 대씩 사다 주면 아이들 모습을 언제든 볼 수 있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부인을 4명까지 둘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 뒤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모바일리 관계자는 “한국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먼저 키봇을 출시할 수 있게 해 달라. 당장 5만 대를 사가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후 KT는 팀을 만들어 사우디아라비아 교육용 로봇 시장을 본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를 진행할수록 시장성이 높게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인구가 2800만 명이지만 3~13세 어린이는 20% 수준인 560만 명으로, 가구당 자녀 수는 3.3명이었다. 우리나라의 3~13세 어린이 숫자는 4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9%에 불과하다.

 부유한 남성일수록 4명의 부인과 많은 자녀를 거느리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아내들과 아이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가장 한 명이 키봇 여러 대를 살 가능성이 컸다. 더운 날씨 탓에 야외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관계로 TV시청 등 콘텐트 소비 시장이 발달한 점도 주목할 만했다. 와이브로·3세대(3G)망이 잘 구축돼 있고 롱텀에볼루션(LTE)도 론칭하는 등 네트워크 환경도 좋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KT 측은 세심하게 배려했다. 모바일리 직원들이 회의 중에도 수차례씩 사라져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고는 미팅 스케줄에 ‘기도시간(prayer time)’을 중간중간 배치했다. 모바일리 직원들은 “이런 세심한 배려는 처음”라며 감동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출장을 갈 때는 항상 금요일에 서울을 출발했다. 무슬림들은 목요일·금요일에 쉬고 토요일부터 한 주 업무를 시작하는 점을 고려해서였다.

 KT는 사우디아라비아 진출을 발판으로 인근 중동국가로 키봇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KT 홈고객부문 서유열 사장은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카타르·바레인·오만 등 시장 상황이 유사한 인접 국가 진출을 놓고도 모바일리와 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키봇(Kibot)

KT와 아이리버가 함께 개발해 지난해 12월 출시한 교육용 로봇. 1만 편의 VOD, 600여 개의 교육용 앱(응용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영어 학습, 동화 읽어주기 등 다양한 교육 콘텐트를 이용할 수 있고 아이의 안전을 지켜주는 원격 모니터링 기능도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기반에 7인치 스크린, 최대 60인치 크기의 빔프로젝터, 500만 화소 카메라를 갖췄다. 대당 판매 가격은 68만1000원. 월 이용료 1만5000원으로 영상·음성 통화를 100분간 무료로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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