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임기 하루 남은 이사들의 총장 해임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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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23일 오전 숙명여대 총장실 앞에선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전날 숙명학원(이사장 이용태) 이사회가 총장서리로 임명한 구명숙 한국어문학부 교수가 본인이 새로 구성한 보직교수 5명과 함께 한영실 총장을 찾아와 업무 인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한 총장 측은 “이사회의 해임 결정은 위법”이라며 인수인계를 거부했다. 이 때문에 총장실 앞 복도에선 교수들끼리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를 벌이고 목소리를 높이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교직원은 “정말 창피해서 학생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는 지경”이라며 “학교가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혼란의 원인은 이용태 이사장을 비롯한 재단 이사들이 전날 기습적으로 총장 해임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총장 해임과 임명권을 재단이사회가 가지고 있으니 필요하고, 이유가 타당하고 절차가 정당하다면 얼마든지 총장을 해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사장과 다른 이사들의 행동은 절차도 어긋났지만 무엇보다 상식을 크게 벗어났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해 총장 해임에 찬성표를 던진 이사 3명은 임기가 단 하루 남아 있었다. 문일경·이돈희·정상학 이사가 그들로 23일이 임기만료다. 지난달 이사회가 이들에 대한 재선임을 요구했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절차상 문제 등을 이유로 승인을 보류했다.

 이렇게 임기를 하루 남긴 이사들이 학교 운영에 커다란 파장과 혼란을 일으킬 게 명백한 총장 해임안을 의결한 것이다. 물론 하루가 남았더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숙명학원 이사회는 대학으로 들어온 기부금을 마치 재단 돈인 것처럼 꾸며 다시 대학에 주는 ‘기부금 세탁’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 때문에 이 이사장과 김광석 이사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승인취소 통보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단 이사들이 기습적으로 총장을 해임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다.

 게다가 이들이 이렇게 무리해서 추진한 의결 자체도 적법성이 없다. 교과부는 이미 이사회 의결에 대해 ‘무효’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립학교법 17조에 따라 회의 7일 전까지 안건을 공지해야 하는데 이사회가 총장 해임안을 이사회 당일 공개했다는 이유다. 이사회는 대학 운영과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 조직이다. 하지만 지금 숙명학원 이사회는 오히려 대학에 혼란만 주고 있다. 본분과 책임을 잊은 행동이 안타깝다.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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