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영화·인디 넘나들던 야인, 45세에 국립국악관현악단 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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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은 “국악의 새로운 붐을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립국악관현악단이 40대 예술감독을 맞아들였다. 주인공은 원일(45)씨다. 한국 국악진흥의 총책을 맡게 됐다. 원씨는 ‘가야금 명인’ 황병기(76) 전 예술감독 후임으로 이달 초 임명됐다. 1995년 창단된 국립국악관현악단 역사에 40대 예술감독은 처음이다.

 국악계에선 “야인이 제도권으로 들어왔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게 원 감독은 경계를 넘나든 국악 연주자 겸 작곡가다. 국립국악고를 졸업하고 추계예술대를 거쳤지만 한국 프리 재즈의 거장 고(故) 김대환(1933~2004)씨를 사사했다. 중앙대 대학원에선 작곡을 전공했고 영화 ‘강원도의 힘’과 KBS 대하드마라 ‘불멸의 이순신’ 등의 음악을 맡았다.

 이 정도 경력에서 그친다면 ‘제도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는 어색할 거다. 원씨는 홍익대에서 인디음악이 피어나던 90년대 초반 어어부 프로젝트 1집, 도시락 특공대 2집에 참여했다. 원 감독을 18일 만났다.

 -황병기 감독 후임이라니 부담스럽겠다.

 “부담스럽고 영광스럽다. 황 감독님은 국악계에서 존재감이 크신 분인데 마음으로 항상 응원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

 -전국에서 많은 국악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차별화할 생각인가.

 “서울시에도 국악관현악단이 있고, KBS 국악관현악단도 있다. 각 도(道)마다 국악관현악단이 활동 중이다. 국악관현악단 대부분이 균질화되어 있다.”

 -뭐가 균질화됐다는 건가.

 “고만고만한 프로그램과 실력이다.”

 원 감독은 인터뷰 도중 국립국악관현악단만의 ‘색깔’을 유독 강조했다. “관현악단이라고 하면 음향적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원들과 함께 이 부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다”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작곡자가 좋은 곡을 맡기고 싶어도 국악관현악단이 그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나.

 “티베트에 가본 적이 있는데 라마승들이 새벽부터 동네를 돌더라. 통역하는 사람이 이곳 사람들은 라마승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국악관현악단은 국악하는 사람들이 그 연주를 들으면 가슴이 뛸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해야 한다. 국악이라는 것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좋을 수 있구나’ 이런 것을 보여줘야 한다.”

 -홍익대에선 언제 활동했나.

 “1993~97년이다. ‘발전소’ ‘곰팡이’라는 클럽에서 활동했다. ”

 -‘잡탕 ’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해봤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와 작업했다. 된장과 케첩이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악관현악단은 지금보다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함부로 섞지는 않을 거다.”

 대학시절 원 감독의 고민은 ‘항상 새로운 음악을 하자’ ‘우리답게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였다고 한다. 그는 “국악은 곡선이고 자연적인데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한의학이 없어지지 않듯 직선적이고 속도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국악은 ‘보약’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공연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명분은 훌륭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국악활성화. 원씨가 들려줄 선율이 정체된 국악계에 어떤 보약이 될 수 있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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