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모순된 국민 복지 의식, 정치권 탓이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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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대 사회복지정책연구소가 엊그제 발표한 ‘사회정책 욕구 및 인식조사’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양극화가 매우 심각하다는 국민 인식이다. 10명 중 9명이 “우리나라의 소득 격차가 너무 크다”고 응답했다. “내가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는 주관적 계층의식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또 10명 중 7명이 “소득 격차 해소는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복지 확대를 통한 양극화 완화가 시대적 요청이란 의미다. 정부와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다. 복지를 늘리려면 누군가는 돈을 더 내야 한다. 현(現)세대가 더 낼 수도 있고, 국채를 발행해 미래세대가 더 부담할 수도 있다. 현세대가 부담한다고 해도 누가, 얼마나 더 내야 하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국민 복지 의식에 우려되는 바 적지 않다.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서도 그 재원은 내가 아닌, 부자들이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명 중 8명이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낮다”고 생각했다. 반면 복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엔 부정적이었다.

 이런 인식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부자의 세부담이 지금도 크다는 점이다. 전체 근로자의 40%는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중간층 40%가 내는 세금도 전체 세수의 5%에 불과하다. 20%의 고소득층이 근로소득세의 95%를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인세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1%의 부자와 대기업만 세금을 더 늘리라는 요구는 자칫 조세저항과 세금 탈루, 부(富)의 해외이전을 촉발할 수 있다.

 국민 인식이 이처럼 모순된 데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탓이 크다. 여야 모두 향후 5년간 90조(새누리당)~165조원(민주통합당)의 복지지출을 더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도 서민과 중산층은 세금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다고 달콤한 약속을 남발했다. 이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空約)이다. 1%의 부자 및 대기업 증세만으로 이만한 재원을 마련할 재간이 없다. 연간 33조원의 복지지출을 추가로 늘리겠다는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증세방안은 부자 소득세 1조원, 대기업 법인세 2조8000억원 정도다. 여기에 금융소득 종합과세나 자본차익과세 등을 다 합친다고 해도 7조원 정도다. 나머지 26조원은 세출 절감 등 재정개혁으로 하겠다는 주장인데, 이게 가능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 만한 일이다. 새누리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산층도 세금을 더 내야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이 얘기는 극구 회피한다. ‘표(票)’를 잃을 게 두려워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국민들도 이 점을 정확히 인식할 때가 됐다. 그래야 허황된 복지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권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