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독 맞먹는 보톡스 독, 150g이면…충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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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여인들이
앉아있거나 이리저리 움직인다
늙거나 젊은 여인들;
젊은 여인은 아름답다.
그러나 늙은 여인은 더 아름답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의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짧은 시다.

늙고 예쁘지 않은 것이 심지어 죄가 되는 외모 지상주의의 나라,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이 시는 현실성이 없다. 늙으면 나타나는 피부의 처짐, 주름 등을 개선하고 젊게 보이기 위해 요즈음은 쁘띠 성형의 일종이라는 보톡스 주사가 대세다. 보톡스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맞았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더 유명해졌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젊게 보여야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남자들의 보톡스는 ‘생계형’이라고 부른단다. 보톡스를 주사로 맞았을 때 일정 기간 동안 그 주사 부위의 얼굴 주름을 펼 수 있다고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톡스의 실체가 신경전달을 억제하는 복어 독에 버금가는 매우 강력한 맹독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몸에서 신경전달은 외부의 자극을 감지하고 이에 적절히 반응하는 신경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신경계는 우리가 뉴런이라 부르는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온몸에 퍼져 있다.

신경계는 뇌와 뇌로부터 발달해 척추를 따라 등으로 뻗어나간 척수로 구성되는 중추신경계, 중추신경계로부터 나와 온몸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간 말초신경계로 구성돼 있다. 신경계를 생활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면 온 나라 구석구석까지 아주 잘 연결된 통신망이나 전산망이라고나 할까.

뉴런들은 시냅스라는 구조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다. 시냅스는 신호를 주는 뉴런과 신호를 받는 뉴런의 두 신경세포로 구성되며 신호전달은 주는 쪽에서 받는 쪽 한 방향으로만 진행된다. 시냅스의 신호전달은 요즘의 발달된 쌍방향 통신망보다는 한쪽에서 신호가 오면 그 신호를 받아 다음으로 신호를 전달했다는 옛날의 봉화 시스템과 유사할 것 같다.

사람의 뇌는 1000억 개 정도의 뉴런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고 알려졌다. 또한 한 개의 뉴런은 평균 1만 개의 시냅스를 통해 다른 뉴런들로부터 신호를 전달받아 이를 통합한 뒤 한 개의 신호로 만들어 이를 다른 뉴런에 시냅스를 통해 전달한다고 한다. 즉 뉴런 하나가 신호를 받는 대상이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

시냅스를 통한 뉴런 사이의 신호전달은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에 의해 매개된다. 신경전달물질은 자극이 오지 않을 때는 뉴런의 말단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신경전달 신호가 오면 분비돼 시냅스의 신호를 받을 뉴런을 자극해 신호전달을 유발한다. 시냅스에서 뉴런 간의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아세틸콜린이라는 화합물이다.

보톡스는 시냅스에서 다음 뉴런으로의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막아 신경전달을 억제한다. 따라서 미세한 양의 보톡스를 주입하면 그 부위 신경의 신호전달을 억제하므로 신경전달에 의해 조절되는 근육이 마비돼 찡그릴 수 없게 되고 주름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일반명사처럼 쓰이지만 보톡스는 미국 제약회사의 상품명이고 원래 이름은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흙에 사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라는 학명의 세균이 만들어 내는 독소 단백질이다. 이 세균은 통조림이나 소시지 등 부패한 육류에 많이 서식하므로 상한 육류나 통조림은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보툴리눔 톡신은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한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으로, 성인의 경우 12~18나노그램의 아주 적은 양이 치사량이고 150g 정도면 전 인류를 죽게 할 수도 있다. 주름 개선을 위한 미용 목적으로 사용할 때는 보통 치사량의 30분의 1 정도를 사용한다고 한다. 현재까지 보톡스를 국부적으로 주사해 사망에 이른 경우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많은 양을 자주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맞아도 100% 안전하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이 독을 처음 치료 목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안과 의사였던 앨런 스콧으로 사시 교정을 위해서였다. 그 후 주로 미량으로, 얼굴 경련이 심한 사람을 위한 치료에 사용됐고 1992년 캐나다계 의사 부부 카루서가가 주름을 완화시키는 미용 목적으로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2002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으면서 널리 미용에 사용되기 시작해 급속히 퍼지게 되었다.

보톡스는 ‘독도 잘 쓰면 약이 되고 인간에게 매우 유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맹독인 보톡스의 쓰임을 보면서 어쩌면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든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중요한 것임을, 그래서 항상 결론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즉 우리의 문제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bc5012@you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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