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벤처 투자가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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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하기저자:루산 퀸들린출판사:좋은책만들기발행일:2000-09-01

우리는 벤처사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혹시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짧은 시간에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정도가 아닐까?

지난해 말과 올 초까지만 해도 인터넷 벤처라는 이름만 붙으면 수익을 떠나 조회 수나 회원 수를 기준으로 엄청난 투자가 이루어졌다. 우리 나라 닷컴기업들은 한결같이 부푼 꿈에 사로잡혀 너도 나도 테헤란밸리로 몰려갔다. 그러나 결국은 끌어들인 자금에 비해 수익 모델을 제대로 창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업 이외의 부문에 투명하지 않게 돈을 썼다. 그 결과 한때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곳으로 기대를 모았던 벤처 신화의 산실 테헤란밸리에서는 이제 경영난을 이유로 떠나는 벤처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벤처투자가가 쓴 벤처세계 이야기

『어느 벤처투자가의 고백』(Confessions of a Venture Capitalist)의 저자 루산 퀸들린(Ruthann Quindlen)은 벤처의 발상지 실리콘밸리에서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벤처투자가로 워튼 스쿨에서 MBA를 취득했고, 1994년부터 IVP(Institutional Venture Partners)에서 근무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 아메리카 온라인(AOL), 앨더스, 볼랜드, 일렉트로닉 아츠, 매카피 어소시에이츠 등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업계 선도기업들의 IPO에 참여했고, 현재도 꾸준히 인터넷 인프라, 전자상거래, 웹 서비스, 디지털 미디어 관련 회사에 투자해 오고 있다.

저자는 주로 실패 사례 위주로 이 책을 전개해 나간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서, 그리고 미숙한 기업가의 결정 및 행동이 초래한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진정 가치 있고 효과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이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기업가들이 회사를 창업하면서 저지르기 쉬운 일반적 실수들을 피하도록 돕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의 마술에 근거한 벤처자본 경제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 책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벤처세계의 이야기들이 솔직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미국에서 최고의 벤처투자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저자는 오직 가능성만 가지고 있을 뿐, 미래에 대해 온통 불확실한 것 투성이인 신생기업에 투자를 결정하기까지의 여러 과정들을 매우 흥미롭게 펼쳐나가고 있다.

벤처기업의 중요한 요소:사람·시장·비즈니스 모델

저자는 투자 의사결정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람’을 꼽는다. 유능한 사람만이 유능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아직 성숙되지 않고 변화가 심한 시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이끄는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장 또한 매우 중요한 분야다. 벤처투자가는 여러 이유에서 큰 시장을 찾으며, 큰 시장이 주는 이득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시장기회를 포착해 성공한 예로 아메리카 온라인(AOL)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인의 10퍼센트 미만이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으나, AOL의 창업자 스티브 케이스는 아직 온라인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90퍼센트의 미국인을 가능한 시장으로 보고 사업에 뛰어듦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퀸들린은 가장 창조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초기 인터넷 선구자인 존 매카피가 개발한 것을 꼽는다. 존은 바이러스 퇴치 소프트웨어를 전자게시판을 통해 개인 사용자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그런데 당시 소프트웨어를 복사해 사용했다는 이유로 소프트웨어 업체들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하고 있던 기업들은 자진해서 사용료를 지불해 가만히 앉아서도 매출액이 치솟는 상황이 창출되었고, 기업공개가 이루어진 뒤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라는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사례를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때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한편 지금까지 벤처투자가로 일하면서 저지른 가장 말 못할 실수로 저자는 온세일(Onsale) 사 관련 결정을 꼽는다. 비록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펜컴퓨터를 선보인 고 코퍼레이션의 창립자 제리 캐플런은 인터넷을 통한 소매업에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웹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으로써 ‘경매’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인터넷 회사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던 저자는 그 기회를 그냥 지나치고, 캐플런은 다른 창업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최초로 경매 서비스와 웹을 이용해 전자상거래 기회를 제공하는 온세일 사를 창업했다. 현재 온세일 사는 전자상거래 혁명의 모든 장점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더불어 저자는 초보 사업가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는다. 그녀가 지적하는 초보 사업가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첫째, 적절하지 못한 사람을 중요한 자리에 기용한다, 둘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작게 생각한다, 셋째, 벤처투자가 등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 경쟁을 과소 평가한다, 다섯째, 회사의 비전을 갖기보다 수익을 올리는 데에만 골몰하는 것 등이다.

실리콘밸리를 알면 테헤란밸리가 보인다

저자는 신생기업에 대한 투자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에 비유한다. 투자한 기업이 화려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짜릿하지만, 실패한 회사를 보면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실패는 벤처기업에서 필수다. 적절한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위험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벤처캐피털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위험과 보상에 따른 평가에 따라 이루어진다. 잠재적 가능성이 충분하면 위험이 커도 투자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위험이 적도록 경영팀과 기술의 성숙도, 투자 자금의 규모, 해결하지 못한 문제, 비즈니스 모델 등을 명백히 분석하고 평가한 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벤처기업 창업 후 최소 5년 정도는 기다려주는 미국에 비해 1, 2년 안에 이익 창출을 요구하는 우리 정부 및 투자가들은 좀 성급한 면이 있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벤처기업에 쏟아진 ‘묻지 마 투자’의 와중에서 머니 게임에 골몰한 벤처기업가들 역시 기업의 수익구조 개선에는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았나 싶다. 벤처기업의 구조조정이냐, 아니면 심각한 위기냐 온갖 의견이 분분한 현시점에서 이 책은 그 동안 우리 나라로서는 낯설기만 했던 벤처사업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더 희망찬 미래를 향해 다시 뛸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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