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일본 시리즈 역사 (5)

중앙일보

입력

(2) 세이부의 대역전

1986년의 일본 시리즈는 세이부 라이온즈와 히로시마 카프의 대결이었다.

이 시리즈는 공교롭게도 두 팀이 일본 시리즈에서 처음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었는데다가, 세이부의 모리 마사아키(현 요코하마 감독)감독과 히로시마의 아난 도시로감독이 그해 처음 감독을 맡았던 '초년병'들이어서 야구팬들은 더욱 흥미를 가지고 관전할 수가 있었다.

'고시엔의 스타' 기요하라 가즈히로가, 기존의 이시게, 아키야마 등에 더해져 비교적 타선도 강화된 세이부는 노장 히가시오를 중심으로 마쓰누마 형제, 구도, 가쿠, 와타나베 등으로 짜여진 막강 투수진까지 갖춰 우승을 장담하고 있었지만, 히로시마 역시 '준족' 다카하시 요시히코가 포문을 열고 야마모토 고지와 기누가사 사치오라는 '살아있는 신화들'이 중심에 선 타선에, 기타벳푸와 가와구치, 가네이시 등의 '막강 마운드'가 더해진 안정된 전력을 유지하고 있어 어느 쪽도 쉽게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막상 시리즈가 시작되자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팬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1차전은 2대2로 비겼으나, 2차전부터 히로시마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2차전 2대1, 3차전 7대4, 4차전 3대1. 거침없는 3연승이었다.

이처럼 시리즈가 불리한 상황으로 치닫자 세이부의 모리 감독은, 포수라는 직책 하에 '요미우리의 V9'을 이끌던 승부사 기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리즈 내내 호조의 컨디션을 보이던 선발의 구도를 마무리로, 마무리의 와타나베를 선발로 돌리는 과감한 작전 변화를 가한 것이다.

혹사가 될지라도 컨디션 최고조의 구도를 상황에 따라 마구 투입하겠다는 모리 감독의 아이디어는, 시리즈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구도는 보직이 바뀐 후부터, 고비 때마다 히로시마 타선을 막아내며 역투에 역투를 거듭하기 시작한 것.

구도 자신이 천금 같은 끝내기 안타를 터트리며 팀에 2대1 승리를 안긴 5차전 이후, 세이부는 앞서가던 히로시마를 무섭게 추격하기 시작했다. 6차전과 7차전을 연달아 3대1로 따내어 순식간에 대전 성적을 타이로 만들어 버렸다.

시합이 진행 될수록 세이부가 고졸 신인 기요하라의 맹타를 바탕으로 타선이 집중력을 보인 반면에, 히로시마는 믿었던 고참급들의 부진으로 기회를 연달아 날리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연이은 패배로 시리즈가 3대3 타이가 되면, '쫓고 쫓기던' 양자의 입장은 금새 뒤집혀 지고 만다.

일본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열린 8차전, 양팀의 벤치 분위기는 말그대로 '극과 극'이었다. 이는 곳 시합 중의 집중력으로도 이어져, 결국 경기는 히로시마의 결정적인 실책에 힘입은 세이부가 승리, 3연패 뒤 4연승이라는 '기적'의 승리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7차전에서, 홈런을 치고 들어오던 아키야마가 덤블린 홈인을 해서 유명하기도 한 이 시리즈는 이듬해부터 수년간 계속될 '세이부 천하'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붉은 헬멧'타선의 쇠퇴를 알리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구도 기미야스는 시리즈 MVP에 선정됨으로써 '우승 청부업자'로써의 서막을 알렸고, 기요하라 역시 신인답지 않은 맹타로 '큰 경기에 강한' 선수의 이미지를 알리지 시작했다.

그러나, 3연패 뒤에 4연승이라는 영화같은 시나리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