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받아준 한국인 걸요 … 첫 월급 모두 기부한 탈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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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40대의 한 탈북 여성이 야간에 식당에서 밤샘 일을 하며 번 첫 월급을 어려운 이웃에게 내놓았다. 이 여성은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에 대해 “탈북한 사람들은 일단 잡히면 자살하겠다는 각오로 생명을 걸고 도망을 나온다”며 “그런 사람들을 강제로 북송하는 것은 흉기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살인 행위”라고 말했다.

 주인공은 2003년 북한을 탈출해 6년간 중국 곳곳을 전전하다 2009년 여름 부산에 정착한 새터민 황민정(43·가명)씨. 12일 부산 금정구청에 자신이 받은 월급 130만원을 기부한 황씨는 “한국에서 저를 받아줬고 이렇게 정착해 살 수 있게 많은 분이 도와주셨는데 그동안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씨의 인생은 지금까지 한 편의 비극이었다. 함경남도 한 도시에 살던 그는 남편이 병사하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2003년 어린 딸을 시댁에 맡기고 혼자 압록강을 건넜다. 당시 황씨는 중국에서 잠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국경 경비가 강화되면서 6년간 중국을 떠돌아야 했다. 이후 중국 당국의 감시망이 좁혀 오자 더 이상 숨어 살기가 힘들다고 판단해 2009년 여름 우여곡절 끝에 한국땅을 밟았다.

 하지만 중국에서 도망 다닐 때 얻은 허리병으로 부산에 정착한 뒤에도 병원 신세를 졌다. 지난해 4월과 9월에는 울산과 부산의 한 회사에 어렵게 취직을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 중간에 그만뒀다. 황씨는 “몸이 아파 삶이 비관적이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외발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삶을 보고 제 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로 정신력으로 병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달 감자탕집에 재취업했다. 그가 내놓은 성금은 이 식당에서 주로 야간에 일해 받은 월급이다. 그는 올해 동부산대학 사회복지과에도 입학했다. 지난해 8월부터 새터민 30여 명이 ‘통일희망봉사단’을 꾸려 고아원과 양로원 등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을 해왔던 게 계기였다.

 황씨는 “제가 북한에 있었다면 이런 월급도 못 받았을 것이고 이런 자유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남은 인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 보도를 보면 중국의 탈북자 중에 올해 스무 살이 된 제 딸도 혹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다”며 “한국과 국제사회가 탈북자 강제 송환을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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