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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피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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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가. 지난 13년간 세계 미술 경매시장 ‘부동의 1위’였던 피카소가 중국 작가들에게 ‘권좌’를 넘겨줬다. 프랑스의 미술시장 분석회사 ‘아트프라이스’가 최근 발표한 ‘미술시장 트렌드 2011’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서화가 장다첸(張大千·1899∼1983)과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가 지난해 가장 잘 팔린 작가(총액 기준)로 집계됐다. 그들은 피카소와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1928∼87)을 누르고 각각 1, 2위에 올랐다. 장다첸의 작품은 지난해 총 1371점, 5억5453만 달러(약 6205억원)어치가 팔렸다. 피카소(총 3억1469만 달러, 약 3521억원)는 4위에 그쳤다.

 특히 근대 중국화(中國畵)의 강세가 눈에 띈다. 낙찰 총액 기준 10위권에 진입한 미술가 중 6명이 중국인, 그것도 모두 근대 중국화가들이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현대정치를 풍자해온 50세 전후의 서양화가, 예컨대 쩡판즈(曾梵志·48)·장샤오강(張曉剛·54) 등이 중국 미술시장의 견인차였다. 쩡판즈와 장샤오강은 지난해 경매 총액에서 각각 24, 40위를 기록했다.

 아트프라이스는 “이제 우리는 피카소와 결별할 때가 됐다. 지난 13년간 전 세계 연간 미술경매 집계에서 낙찰총액 1위를 차지했던 피카소는 이번에 두 중국 화가뿐 아니라 앤디 워홀에게도 밀렸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최병식(예술철학) 교수는 “중국 현대미술가에서 시작된 세계 컬렉터들의 관심이 이제 그 선배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 중심에 근대 중국화의 대표 주자인 장다첸·치바이스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피카소의 뒤를 이은 작가는 쉬베이훙(徐悲鴻·1895~1953)·우관중(吳冠中·1919∼2010)·푸바오스(傅抱石·1904∼65)·게르하르트 리히터(80)·프란시스 베이컨(1909∼92)·리커란(李可染·1907∼89) 순이다. 생존 미술가로는 독일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지난해 5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184만 달러(약 264억원)에 팔린 장다첸의 ‘가우도(嘉??圖·연꽃과 중국오리들)’. 장다첸의 그림 중 가장 비싸게 팔렸다.

 
◆미술시장의 블랙홀, 중국=장다첸은 지난해 낙찰총액 기준 1위, 치바이스는 단일 작품 가격으로 1위를 기록했다. 치바이스의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는 지난해 5720만 달러(약 718억원)에 거래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장다첸과 치바이스는 ‘남장북제(南張北齊, 남의 장다첸 북의 치바이스)’라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치바이스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워나 목수 일을 하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장다첸은 중국 둔황에서 2년간 살며 옛 그림을 모사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중국을 떠나 유럽 곳곳을 다녔고, 말년에 대만에 정착했다. 이들은 전통의 답습에 그치지 않고 강렬한 색채, 자유분방한 붓질, 추상에 가까운 형태 실험 등으로 오늘날에도 통할 만한 현대적 미감을 구축했다.

 특히 그들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은 각별하다. 2008년 중국 최대 경매사 중 하나인 자더(嘉德)의 커우친(寇勤) 부총재는 “중국인은 피카소 한 점보다는 치바이스 열 점을 택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 경매 시장에서 아시아, 특히 베이징과 홍콩의 파워도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미술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한 점유율은 41%. 미국(24%)의 두 배에 가깝다. 영국(19%),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중국 내 컬렉터들의 취향이 세계시장을 움직일 정도가 된 것이다.

 서울옥션 최윤석 미술품 경매팀장은 “미술사든 미술시장이든 이제 중국 미술을 빼면 얘기가 안 될 정도다. 한때 ‘자국민들이 자존심으로 구입한다’고 폄하됐던 중국 미술품이 정말로 중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대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미술가는 500위권에 김환기(219위), 이우환(246위) 두 명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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