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돌며 탁구채 훔친 40대 주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김기환
사회 부문 기자

사회부 기자는 매일 사건·사고와 씨름한다. 지면에 싣지 못한 사건도 많다. 지난 겨울도 그랬다.

 #1. 주부 윤모(41)씨는 대형마트에서 탁구채를 훔치다 붙잡혔다. 수도권 일대의 대형마트를 돌며 탁구채 95개를 훔치고, 이를 환불해 510여만원을 챙겼다. 남편과 별거 중인 윤씨는 경찰 조사에서 “직업도 없이 홀로 중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다. 생활비가 없어 물건을 훔치게 됐다”고 말했다.

 #2. 류모(56·무직)씨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타고 빈집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사업 실패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빈집 털이에 나선 것이다. 류씨는 경찰 조사에서 “훔친 물건을 팔아 자식들에게 세뱃돈이라도 쥐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당하고, 때로는 딱한 사연들. 최근 기자의 취재수첩에 적힌 사건이다. 이들 절도범에겐 공통점이 있다. 경찰에서 “생활고 때문에…”라며 눈물 짓는다. 어쩌면 ‘21세기의 장 발장’인지도 모른다.

 절도는 대표적 ‘생계형 범죄’다. 경찰청에 따르면 절도 범죄 발생 건수는 2008년 22만 건에서 지난해 28만 건으로 27%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범죄 건수는 206만 건에서 175만 건으로 15% 줄었다. 이에 따라 절도가 총 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년 새 11%에서 16%로 늘었다.

 생계형 범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기·횡령·배임 등 경제 범죄가 2008년 23만 건에서 지난해 24만 건으로 4%가량 증가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몇 천원 때문에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도 늘었지만, 수십억~수백억원을 ‘꿀꺽’하는 대도(大盜)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른바 ‘범죄의 양극화’다.

 범죄 양극화는 경제 양극화와 맞물려 있다. 먹고살기 팍팍한 서민이 늘다 보니 생계형 범죄가, 부(富)의 집중 우려 속에서 한탕을 노리다 보니 경제 범죄가 늘었을 터다. 양극화 해소의 필요성이 범죄 통계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찾아올 겨울에는 “생활고 때문에…”란 장 발장의 얘기들이 기자의 수첩에 그만 적히기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