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문의 새 길] 10. 위기경제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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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시도한 경제개혁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란 미국경제의 위기와 그것이 초래한 금융세계화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양김(金) 정부 개혁의 본질은 한국경제를 금융세계화로 통합하는 데 있다. 특히 1997~9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이 것만이 재벌체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위기란 본질적으로 자본축적의 위기이고 그 궁극적 원인은 이윤율의 저하에 있다. 미국의 경우 65년을 전후로 이윤율의 저하가 관찰되는데, 이로 인해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은 73~75년 무렵이다.

위기에 빠진 미국경제의 성격은 크게 변화한다. 우선 60년대 유로달러 시장의 활성화, 70년대 석유달러의 환류에 힘입어 은행자본이 초(超)민족화하면서 전통적인 초민족적 법인자본(다국적기업)은 얼마간 위축된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가 시도한 고금리 및 강한 달러 정책막?인해 중남미 신흥공업국의 외채위기가 발생하면서 초민족적 은행자본의 한계가 드러났고 이후 초민족적 법인자본이 다시 대두한다.

그렇지만 80년대 중후반 레이건~부시 정부를 거치면서 주식시장이 활성화되고 법인자본의 지배구조도 금융화되었기에, 법인자본의 초민족화는 '금융세계화' 라는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활동에서 직접투자(지분자본투자)와 주식투자(지분증권투자)는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이는 주식투자가 인수.합병의 주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90년대 클린턴 정부 아래 미국은 주식시장의 호황과 여피족의 과소비에 근거하는 이른바 '신경제' 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이윤율은 아직도 73~75년 경제위기 직전 수준을 겨우 회복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60년대 노동자와 중산층을 포섭했던 '보통 사람의 위대한 사회' , 그리고 제3세계 민중에게 근대화를 약속했던 '진보를 위한 동맹' 같은 미국의 꿈을 희생한 대가일 뿐이다.

90~91년 소련 및 동유럽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라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봉쇄정책' 에서 '포용정책' (더 정확히 번역하면 '접촉정책' )으로 전환한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소멸하여 미국자본의 진출을 상대적으로 자제했던 기왕의 정책이 철회되고 금융세계화로의 통합 압력이 제고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 결과 아시아 신흥공업국은 97~98년 경제위기를 맞게 되는데, 우리의 경우는 재벌체제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다른 경우와도 차별성을 갖는다.

사실 재벌체제의 위기는 60~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수출지향적 공업화 전략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79~80년 경제위기는 이윤율의 급격한 저하와 최초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과 동시에 외환위기와 외채위기가 발생한 구조적 위기다.

이는 73~79년 중동건설 호황에 힘입어 본격화한 재벌 중심의 중화학공업화가 오히려 이윤율의 저하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80~83년 전두환 정부의 경제개혁이 이런 구조적 위기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86~88년 '3저(저금리.저달러.저유가)호황' , 특히 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엔화 평가절상과 그에 따른 일본 자본 및 기술의 수입으로 인해 재벌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을 따름이다.

또 93~94년 김영삼 정부의 경제개혁은 95년 엔화 평가절하에 따른 '역(逆)플라자 현상' 으로 인해 좌절되는데, 3저 호황 직후인 89년 이윤율 수준조차 채 회복하지 못한 재벌체제는 95년 WTO 출범, 96년 OECD 가입에 따라 금융세계화로 통합된다. 곧이어 발생한 97~98년 경제위기는 79~80년 경제위기와 동일한 양상을 띠는 구조적 위기다.

79~80년과 97~98년의 경제위기의 원인이 중화학공업화와 재벌 체제로 인한 이윤율의 저하에 있다면, 전두환 정부의 경제개혁과 양김 정부의 경제개혁 사이의 친화성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각각 3당 합당과 디제이피(DJP) 연합을 통해 집권한 양김 정부가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 에 따라 사활적인 목표로 내건 금융.재벌개혁은 실은 전두환 정부의 미완의 과제를 완수하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양김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세력이 군사정부에 비해 정통성 문제로 덜 시달리는 만큼 진보세력에 대해 더 큰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93년 이후 진보세력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를 자유.진보 대 보수의 구도로 전환하자고 화답하면서 문민화 과정에 통합된다. 구조조정에 금융.재벌개혁뿐만 아니라 노동개혁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김영삼 정부 때부터 가능성이 제기된 남북 정상회담도 미국의 포용.접촉정책에 따라 노태우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작업을 계승하려는 것이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이란 '페리 프로세스' 가 규정하는 대로 정치.군사 또는 경제 분야와는 별도로 이산가족상봉 및 문화.스포츠 교류를 통해 여론을 조성한다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을 뿐이다.

윤소영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 다음은 이화여대 정재서 교수의 '제3의 중국학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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