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대형마트 규제가 농심을 아리게 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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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권혁주
유통팀장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면 농업인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우리 의견을 들으러 오는 이들은 없더군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연) 정책조정실 박재현 차장의 한탄이다. 그가 걱정하는 이유는 이렇다. 요즘 지자체들은 앞다퉈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이 매달 두 차례 일요일에 문을 닫도록 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회가 6일 이런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성북구도 의결을 앞두고 있다. 만일 전국의 지자체가 같은 식으로 조례를 고치면 이로 인한 매출 감소가 연 3조3940억원에 이를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이 중 농산물 매출 감소분이 5584억원에 달한다. 혹자는 말한다. “대형마트에서의 농산물 판매는 줄지만, 그만큼 재래시장에서 살 것이므로 전체 농산물 판매량은 영향이 없다”고.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인에게 대형마트는 쇼핑을 겸한 가족 나들이 장소다. ‘가족 나들이’ 기분을 낼 수 있는 재래시장이 아니고서야 소비자들을 붙잡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나들이에 제격인 재래시장이 몇이나 될까.

 강제 휴무 규제를 받지 않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다지만, 가 본 사람은 안다. 하나로마트 역시 주말 나들이 분위기를 만끽하기엔 2% 부족하다. 규모가 작아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다 돌아보는 데다 쇼핑 도중에 심심풀이 먹거리도 대형마트처럼 풍성하지 않다. 결론은 ‘대형마트가 강제 휴무를 하면 다른 데서 소비가 일어나기보다 전체 소비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농업인들까지 어느 정도 타격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

 농업인들이 걱정하는 건 당장의 매출 감소뿐이 아니다. 농산물이 덜 팔리게 된 대형마트들이 계약재배를 줄이는 것이 더 두렵다. 박 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 대형마트가 계약을 할 때 값을 후하게 쳐주지는 않는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계약재배가 줄면 농업 기반이 흔들린다.”

 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이렇게 농업인들에게 발등의 불이다. 그럼에도 규제 결정권을 쥔 기초자치단체 의원 중에 농업인의 사정을 헤아리려는 이는 없었다는 게 대표 농업인 단체인 한농연의 얘기다. 혹시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이 ‘농업인들의 표는 나 자신의 당락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대형마트 규제를 결정하는 지자체는 대부분 대형마트가 진출한 도시 지역이기에 해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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