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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가르기 증후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0호 31면

당구를 매일 치는데도 실력이 별로 늘지 않는 사람이 프로당구 선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당구 실력이 늘까요?” 대답은 간단했다. “더 많이 하면 됩니다. 저도 하루 10시간씩 연습합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 쳐서는 동네당구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당구만이 아니라 야구도 골프도 다 마찬가지다. 근육에 강력하게 코딩(coding)해야 매번 같은 스윙이 가능하다. 열심히 연습한다고 모두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건 아니지만, 수준급 소리는 들을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도 걸을 수도 없다. 코딩이 행동과 습관을 결정한다. 식성도 그렇고 옷 입는 스타일, 그 무엇 하나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인 코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게 된 것도 강력한 코딩이 주효한 덕분이라고 본다. 소 팔고 논을 팔 만큼 자녀 교육에 강한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같은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을 통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강한 코딩이 지난 50여 년간 이어져왔고 현재의 성취를 낳았다.
물론 좋은 코딩만 있을 리 만무하다. 자칫 나쁜 버릇을 키우고 심한 경우에는 중독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코딩 때문이다. 어릴 때 준법의식이 약하게 코딩돼 있기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훌륭한 부모 아래 범죄 자녀란 존재하지 않는다. 훌륭한 부모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학식이 많은 부모가 아니라 자녀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스스로 모범이 되는 부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즘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지만 학교보다는 부모의 문제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코딩된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우리 사회는 지금도 시끄럽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우리는 서로 다르게 바라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무상급식, 대북 정책 등 여러 현안을 놓고 우리 사회는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다. 서로 상대방을 헐뜯고 좀체 타협과 절충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른 것일까? 코딩이 다르게 됐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획일적인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사고의 다양성은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타민이다. 생각이 달라야 변화와 발전이 있을 수 있다. 창의적이란 말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정말 다양한 생각이 존재해야 하는데 단지 둘로만 나눠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로는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에 오로지 양극(兩極)의 두 가지 목소리만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획일적으로 코딩돼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딩이 강력하게 이뤄지면 “팥으로 메주를 쒔다”고 해도 믿어버린다. ‘인신공양’ ‘마녀사냥’이 불과 몇 백 년 전까지 행해진 것도 잘못된 코딩 탓이다. ‘과연 그럴까?’라는 합리적 의심은 건강한 사회의 조건이다. ‘진영논리’라는 것 자체가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코딩이 이뤄졌다는 것을 말한다. 편을 갈라 자기네만 옳다고 우기는 것. 오늘날 우리 사회를 피폐하게 만드는 ‘잘못된 코딩’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스윙 연습을 갑자기 많이 하다 보면 손에 물집이 잡히고 허물이 벗겨진다. 갈비뼈에 금이 가는 경우도 생긴다. 이 모두 빠르게 코딩을 하다 생긴 부작용이다. 우리나라만큼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코딩이 급속히 이뤄진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진영논리 역시 너무 빠른 코딩에 따른 일시적인 부작용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이창무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형사사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퀴즈 후즈후 세계인명사전의 형사사법 분야에 국내 최초로 등재됐으며, 저서로 『패러독스 범죄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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