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서 컴퓨터 가게하다 서울대 수퍼컴 점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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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링크 이동학(46)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수퍼컴퓨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컴퓨터 가게를 하던 토종 사업가가 전 세계 수퍼컴퓨터 시장 석권에 도전하고 있다. 서울대 지주회사 코코링크의 이동학(46) 대표 얘기다. 마침 서울대 측은 2010년 고장 난 서울대 중앙전산원의 수퍼컴퓨터를 이씨가 개발한 수퍼컴퓨터로 올해 안에 대체하기로 했다.

 2일 서울대 연구공원 내 코코링크 사무실. 수퍼컴퓨터를 만드는 연구실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평범한 사무실이라고 여길 정도로 아담한 공간이었다. 30평 남짓한 연구실에는 각종 전자부품 사이에서 직원 2명이 작업 중이었다. 이씨는 “수퍼컴퓨터라고 하면 방을 꽉 채우는 엄청난 기계 덩어리를 생각하지만 요즘 수퍼컴퓨터는 일반 데스크톱 크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4년 서울대 농업기계과에 입학했다. 대입 학력고사 직후 컴퓨터 알고리즘 책을 읽고 나서 컴퓨터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서울대에 붙었다며 고향인 경남 진주시에서 준 향토장학금으로 XT급 컴퓨터를 장만했다. 학교 수업에는 얼굴 도장만 찍었다.

 그는 졸업 전인 86년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업했다. 교수가 “졸업장은 따야 한다”고 했지만 그의 삶의 목표는 컴퓨터뿐이었다. 88년엔 신림동 고시촌에 컴퓨터 부품 가게를 차렸다. 20평 남짓한 가게는 당시 젊은 컴퓨터 공학도들의 아지트가 됐다. 한글과컴퓨터 창업자 이찬진(서울대 기계공학과 85학번)씨도 자주 찾아왔다.

 90년대 중반 그는 요즘 애플의 ‘앱스토어’와 같은 콘텐트 플랫폼 서비스 ‘Pre-win’을 고안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 개발 완료 시점에 2대 주주가 투자를 철회하며 사업을 접어야 했다. 3년간 절치부심하던 그는 2005년 코코링크를 창립했다. 코코링크는 콘텐트(content)와 커뮤니티(community)를 엮는다는 뜻이다.

 2007년 미국 학술지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이론을 접한 이씨는 수퍼컴퓨터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2010년 동일 사이즈의 중앙처리장치(CPU)를 썼을 경우 10분의 1 가격으로 100배 이상 성능이 뛰어난 GPU기반 수퍼컴퓨터 개발에 성공했다. 이 수퍼컴퓨터는 이달 전파인증 후 상용 출시될 예정이다.

 이씨는 요즘도 자신이 운영했던 신림동 컴퓨터 가게에 들른다. 현재는 컴퓨터 조립 및 제작을 하는 작업실로 쓰고 있다.

 그는 “우리가 개발한 수퍼컴퓨터는 현재 서울대 중앙전산원 수퍼컴퓨터보다 10배 이상 빠른 데이터 처리 성능을 보인다”며 “3년 안에 일본 후지쓰의 수퍼컴퓨터 ‘K’를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고, 규모 면에서도 세계 1위 수퍼컴퓨터 회사인 크레이를 따라잡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원엽 기자

◆수퍼컴퓨터=대규모 데이터를 초고속 처리할 수 있는 과학 기술 계산 전용 컴퓨터. 연산처리 속도가 매초 10억 회 이상으로 기상예보나 유전자 분석, 로켓 개발, 우주 연구 등 대규모 연산이 필요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수퍼컴퓨터의 순위는 ‘국제 수퍼컴퓨팅 콘퍼런스(ISC)’에서 매년 두 차례 발표하며 톱500 사이트(http://www.top500.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상청 수퍼컴퓨터 3호기가 지난해 11월 3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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