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IT] 인터넷 등급제 '득보다 실'

중앙일보

입력

이상희 <국회 과학기술
정보통신위원장> 얼마 전 청소년으로부터 유해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내용물의 등급을 자율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인터넷 내용등급제'' 의 시행 방침을 정부에서 발표했다.

정보통신부는 인터넷 건전화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설득하고 있지만, 반대론자들은 인터넷 내용을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고 청소년 보호 효과도 의문시된다며 인터넷 등급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이제 사이버세계는 떼어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따라서 인터넷이 적절히 규제되고 통제돼야 할 필요성도 대두되고, 여과되지 않은 채 범람하는 음란 폭력물에 대한 대책마련도 시급하다.

정부는 인터넷등급제가 시행되면 연령별로 다양한 맞춤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돼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며, 이용자가 등급을 보고 적절한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설득력있는 여러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터넷등급제는 표현의 자유의 심각한 제한, 정보교육상의 자율과 창의성의 상실, 인터넷 산업의 발전을 해칠 우려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통신 공간의 음란 폭력물 규제는 오늘날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다.

그러나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끊임없이 정보수용자의 능동적 개입과 참여를 요구하고 정보에 대한 식별력을 키워주는 만큼 궁극적으로 유해정보를 이용자 스스로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 어떨까.

둘째, 표현의 자유 문제다. 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 가운데 사회적 합의기준에 따라 걸러내야 할 정보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국경이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다른 나라에 있는 컴퓨터 속의 정보를 규제하는 방법은 없다.

또한 통신망 안에서 유통되는 유해정보를 모두 규제하려면 인터넷 이용자들의 개인 웹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져야 하는데, 이 경우 개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을 수 있다.

셋째, 정보 교육상의 자율과 창의성의 문제다. 통신공간에서 하나의 획일적 기준을 가지고 모든 정보내용을 심의하고 그러한 기준의 적용을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발상은 오늘의 통신네트워크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용자가 동시에 정보공급자가 될 수 있는 네트워크 환경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이용자의 자율과 창의성이 최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넷째, 인터넷 산업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문제다. 정부는 모든 사업자를 처벌 대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이뤄지는 진정한 자율 규제에 동참할 정도의 힘있는 사업자가 나올 수 있도록 옥석을 가리는 규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또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을 위반한 자는 전문 수사기관의 신속한 수사와 사법부의 공정한 재판을 통해 제재를 가한다는 원칙에 충실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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