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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나꼼수, 키득대는 해적방송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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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주변에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듣고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됐다는 청년이 있다. 나꼼수, 간단하게 말하면 ‘뚜러뻥’ 같은 존재다. 막힌 변기를 뻥 뚫어주는 그 막대기처럼 나꼼수의 ‘가카 비틀기’는 청춘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틔워주었다. 좌절 모드에 젖은 청년들에게 한순간이나마 카타르시스를 주었다는 점에서 나꼼수는 순기능이 있었다.

 그렇다고 나꼼수를 듣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이제 원론적인 얘기를 해보자. 나꼼수는 팟캐스트(Podcast=Ipod과 Broadcasting을 결합한 신조어)다. 인터넷을 통해 오디오나 비디오 파일을 내려받아 즐기는 맞춤형 개인 미디어를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게 ‘맞춤형’이다. 팟캐스트를 누가 들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한밤중에 이걸 듣고 골방에서 낄낄거리든, 광화문 한복판에서 구호를 외치든 청취자들은 제 욕망대로 소비하고, 놀면 그만이다.

 나꼼수 멤버들은 그래서 욕설도 날것 그대로 유통한다. ‘씨바’ ‘졸라’ 등 거침이 없다. ‘성욕 감퇴제’니 ‘생물학적 완성도’니 하며 유치한 성적 농담 늘어놓으며 히히거리는 것도 일상이다. 이들은 자신을 양아치라고 부른다. 도덕과 지성은 안중에도 없다. 나꼼수가 해적방송이라고 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나꼼수에 대고 “영향력이 커졌으니 윤리와 책임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은 촌스럽다. 나꼼수는 권력으로 우뚝 서기 위해 태어난 팟캐스트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지껄임이 갈채를 받자 ‘허걱’ 놀란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떴을 뿐이다.

 나꼼수 멤버들도 당황했을 게다. 그저 말초신경 자극해 가카를 까려고 한 놀이였는데 붕 치솟아서다.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고 착각한 멤버들은 우쭐대기 시작했다. 우상이 된 양 거침없이 나갔다. 그러다 비키니 사태로 양아치의 속내가 까발려졌다. 그들은 그래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우린 원래 그랬다. 하던 대로 양아치 짓 할 테니 욕하든 말든 관심 없다’고 선언했다.

 다음 차례는 이런 양아치에 걸맞은 대우다. 나꼼수 팬들은 지금쯤 방송 품평회를 해야 한다. 나꼼수가 짚었던 예민한 이슈들이 모두 사실(fact)로 확인됐나. 성적 모욕 계속하겠다는 그들의 마초이즘에 계속 열광할 것인가.

 이제 나꼼수를 제자리에 앉혀야 한다. 추종자들끼리 모여 뒷방에서 키득대는 정치 오락물로 딱 제격인 프로그램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평가받아야 나꼼수도 오래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우리 편’ 논리에 빠진 일부의 맹목적 지지를 업고서 권력으로 우쭐댄다면 소멸의 길은 멀지 않을 것이다. 이미 비키니 사태 이후 나꼼수 열풍은 눈에 띄게 식고 있다. 나꼼수는 반칙을 일삼는 권력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해적방송이 맞다. 박수도 받았다. 역할은 거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