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만 보지 말고 경제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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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총선과 대선에 온통 신경이 팔린 사이 우리 경제의 안팎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유로 캐리 트레이드(낮은 금리로 유로화를 빌려 해외의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기법)로 주식·채권 시장은 온기가 도는 반면 실물 경제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단단히 대비하지 않으면 4월쯤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나라 밖은 악재투성이다. 이란의 핵(核) 문제가 불거지면서 두바이유는 다시 배럴당 120달러로 치솟았다. 유럽연합(EU)은 재정위기로 올해 유로존 경제가 마이너스 0.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엔화 가치는 국내 수출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고(高)유가·유럽 침체·엔 약세의 삼각파도는 우리의 수출과 내수에 모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역수지는 연초부터 적자로 곤두박질했다.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4.4%(지난해 7월)→3.9%(지난해 9월)→3.6%(올해 초)로 계속 내려왔다. 최근에는 3.0% 성장에 머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3월에는 마이너스 성장에 빠질지 모른다는 비관적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 경제가 곳곳에 도사린 지뢰를 무사히 넘어간다 해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내리막길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신속하게 잘 넘겼다. 정부는 과감한 재정·금융정책을 동원했고, 기업들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미국·일본·중국 등과 맺은 통화스와프 협정도 위기 탈출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 덕분에 지난 4년간 우리의 평균 경제성장률이 3.1%로 전 세계 평균 성장률 2.8%를 뛰어넘었다. 노무현 정부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4.3%로 세계 평균 성장률 4.8%보다 낮았던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올해는 해외에서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국내의 경제환경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가계부채는 912조원을 넘어섰고,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의 대출 비중이 늘어나 언제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지 모른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자와 소비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온 사회가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을 판에, 양대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 때리기와 복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외환위기-카드사태-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정권 임기 말마다 반복돼온 또 한번의 경제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혼란스러운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삭풍(朔風)에 맞서야 할 것이다. 재정의 조기 집행과 함께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한다는 각오로 경기 하락에 대처해야 한다. 수출 전망이 어두운 만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내수 진작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경제에 큰 충격을 미치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남아있는 부동산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의 상시화(常時化) 시대를 맞고 있다. 치밀한 비상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신속하고 선제적인 대응으로 삼각파도에 맞서야 할 것이다. 경제는 심리이고,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