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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뿌리 뽑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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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동구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

연초부터 국내 4대 프로 스포츠가 승부조작 파동에 휘말리며 뿌리째 흔들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어 프로야구와 배구·농구까지 승부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장래가 유망했던 선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영구제명 당할 처지가 됐다. 지난해 8월 40명의 프로축구 선수와 7명의 선수 출신 브로커 등 총 47명이 협회로부터 영구제명 조치를 받은 지 불과 6개월 만에 터진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벌어지는 승부조작 사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며 언제든 터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프로는 돈이 우선하고 승리지상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번 승부조작 사건의 진원지인 프로배구연맹은 “선수 개개인이 당시 처한 상황이 어렵든 좋든 그 부분은 개인이 현명히 판단해야 한다”며 관련 선수에게 승부조작의 귀책 사유가 있음을 지적하고 관련 선수에 대해 영구제명 등의 중징계를 하겠다고 했다. 연맹은 도의적인 책임은 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축구의 경우에도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진 뒤 근본적인 원인분석과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선수들에 대한 중징계 결정으로 모든 것을 일단락 지어 버렸다.

 물론 모든 선수가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정신과 우리나라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선비정신으로 단단히 무장해 도덕적으로 모범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 성과를 중요시하고 목표지향적인 엘리트 스포츠 문화에서 선수 개개인에게만 모든 짐을 떠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선수들이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선수들을 지원하고 길을 열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선수들이 다른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선수들의 비(非)스포츠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호주스포츠위원회는 1994년부터 ACE(Athlete Career and Education)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각 주(州)마다 상담원을 배치하여 ‘개인 전문성 강화 훈련(시간관리·예산관리 등), 인생설계 및 목표 설정’ 등 9개의 주요 상담 주제를 정해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성과도 좋아 프로그램에 참여한 선수 가운데 78%가 기량 향상에 도움을 얻었으며, 90%는 선수생활 연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 J-League는 협회와 선수협의회가 공동으로 CSC(Career Support Center)를 운영한다. ‘위험 관리(Risk Management)’를 포함한 교육과 상담을 정기적으로 하면서 경기 외의 사회적·심리적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선수들을 위한 체계적인 관리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승부조작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건 발생 후의 ‘규제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중심’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또 선수 개인에게만 잘못을 추궁하기보다는 체육계가 머리를 맞대고 선수들을 위한 경기 외적인 지원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해야 할 것이다. 사건이 터진 다음 선수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대응하다가는 언제든 같은 사건이 재발하는 악순환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페어플레이를 유도하는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는 선수들뿐 아니라 스포츠를 즐기는 팬, 운동선수를 본보기로 삼고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청소년 모두를 위해서 반드시, 그리고 서둘러 해야 한다.

정동구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