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를 사랑하는 감독 '자파르 파나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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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순환〉으로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란 감독 자파르 파나히는 부산과 인연이 깊다. 1회 부산영화제때 데뷔작〈하얀풍선〉을 출품했고, 3회때는 그의 두번째 작품〈거울〉을 가지고 부산을 찾았다. 특히〈거울〉은 부산에서 그 소재를 찾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올해는〈순환〉을 가지고 다시 부산을 찾았다.

〈순환〉은 작년 부산 프로모션 플랜의 초청 프로젝트였다. 순환하는 이란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그린 영화〈순환〉은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되기 사흘전 겨우 정부의 검열을 통과한 용기있는 작품이다. 딸을 낳아 낙심하는 산모의 어머니,감옥에서 탈출한 두 여성,가난으로 딸을 버리는 어머니 등 주요인물을 계속 교체하는 형식으로, 남자 없이 여행도,낙태도 불가능한 이란 여성의 억압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앞에서 보여졌던 모든 여성들이 어두운 감옥 안에서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탈출조차도 불가능한 이란이라는 커다란 감옥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이란 여성의 암울한 현실을 은유하는 듯하다.

8일〈순환〉상영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부산영화제에 다시 초대받게 돼 영광이다. 젊은 관객들과의 교감을 통해 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며 첫 소감을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이자리에 함께 참석한 아시아 영화 프로그래머 김지석씨는 여러 국제영화제 관계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부산영화제가 최고야"라고 외쳤던 일화를 함께 소개했다. 개막작〈레슬러〉의 주연 여배우 자이야 실도 관객으로 참석, 질문을 던져 눈길을 끌었다.

-〈순환〉은 여성의 현실을 그린 영화인데 어떤 방식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나. 취재를 했는지 아니면 여성이 직접 참여했는지.

"이란에서 자라면서 직접 눈으로 보아 왔던 일들을 쓴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1년정도 혼자 준비했다. 시나리오는 친구와 두달정도 공동작업을 했다. 시나리오 완성 후에는 여성도 스탭으로 참여했다. 조감독 중 한명도 여성이었다."

- 억압적 현실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담배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담배는 사소한 것이다. 담배를 통해 일상속의 제약과 한계를 동시에 말하고자 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하나의 순환하는 원(circle)안에서 살아간다. 물론 그 원이 큰 곳도 작은 곳도 있으며 그 안에는 사회적,정치적,가족의 문제 등 모든 문제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그 원이 좀더 커지는 것을 때로는 벗어나기를 원하기도 한다."

- 실제로 이란에서 여성들간의 동료 의식이나 고부간의 갈등같은 문제가 있는가.

"물론 여성간 동질감이 있지만 누구나 쳇바퀴같은 원안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비단 이란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은 다 똑같은 거 아닌가."

- 딸을 낳는 첫 장면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영화가 이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가.

"첫 장면 뿐 아니라 영화의 모든 장면이 자라면서 겪은 직,간접적 경험과 관련이 있다. 이 영화가 현실적으로 여성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더라도 거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앞에 등장했던 모든 여성들이 감옥에 갇힌 모습을 비추면서 끝난다. 악순환을 주제로 삼은 것인가.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모든 인간의 문제를 다룬 영화이다. 모든 인간들은 정해진 틀 속에서 한계와 제약을 받으며 살고 있다. 단지 그러한 주제를 표현하는데 여성의 상황을 통해 더 드라마틱하게 표출될 수 있었던 것이다."

- 들고 찍는 핸드 헬드 기법 사용이 많은 것 같다. 이유가 있다면.

"등장인물의 심리와 상황에 따라 촬영기법도 달라진다. 처음 등장하는 마르게스는 가장 젊고 자유분방한 여성이다. 그녀를 찍을 때는 카메라도 자유분방하게 그녀의 심리를 따라갔다. 뒤로 가면서 좀더 경험과 연륜이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카메라는 거의 고정되고 카메라 앵글도 좁아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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