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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이어온 한국메틀 꿈' 블랙홀 7집

중앙일보

입력

금주에는 척박한 한국 록의 토양 위에 14년 동안 메틀음악의 열매를 가꿔온 관록의 그룹 블랙홀, 미풍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감성의 음유시인 이상은이 새 앨범을 발표했다. 흔히 음반판매량과 인기가 성공의 척도로 쓰이는 대중음악계에서 예술적 신념으로 자기만의 길을 고집해온 이 들의 속 깊은 매력을 느껴보자. 아울러 20년 음악생활을 두 장의 CD에 집약한 카시오페아의 라이브 음반도 소개한다.

■ 세븐 사인(Seven Signs)/ 블랙 홀(Black Hall)

▶ 수록곡 듣기
거지에서 황제까지
어둠 속의 빛
접속 2000
Big Brother
생명의 서(誓)

14년간 한국 메틀의 자존심을 지켜온 그룹 블랙홀의 일곱번째 정규음반. 가벼운 유행, 얄팍한 상혼에 휩쓸리지 않고 긴 세월 정통 메틀을 고집한 이들의 음악엔 가슴 벅찬 관록과 순수한 열정이 배어있다.

2년만에 선보인 새 음반 역시 멤버들의 출중한 연주와 한국적 멜로디가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기타·베이스·드럼이 쏟아내는 명료한 메틀사운드는 인위적인 디지털 음악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진솔한 멋을 지녔다. '세븐 사인'이란 제목이 다소 진부하지만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7가지 종말 징후와 2개의 구원 메시지로 함축했다.

블랙홀 음악의 빼 놓을 수 없는 멋은 친근하고 깊이 있는 가사. 국문학 석사출신으로 기타와 보컬, 전곡의 작사·작곡을 도맡아 팀을 이끌고 있는 주상근의 작품이다. '문학의 감동을 음악에서 찾는다'는 그의 곡은 선율과 가사의 절묘한 어울림, 견고한 구성이 독보적이다.

첫 곡 '거지에서 황제까지'는 긴박감 넘치는 리듬, 자유롭게 꿈틀대는 선율이 흥겨운 스피드 메틀 곡. '무소유를 통해 세상을 얻으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았다. 타이틀 곡 '어둠속의 빛'은 스트링 사운드로 멋을 낸 메틀 발라드다.

'접속 2000'은 영화〈사무라이 픽션〉의 주연을 맡아 국내에도 알려진 일본 가수 호테이 토모야스의 '스릴'을 번안해서 부른 곡. 밝은 멜로디와는 대조적으로 채팅을 통한 도덕파괴의 심각성을 노래한다. 조막손 드러머 김응윤의 신들린 드럼 속주가 인상적인 '빅 브라더', 발라드 '생명의 서(誓)'도 듣기 좋다.

■ 쉬 원티드(She Wanted)/ 이상은

▶ 수록곡 듣기
성녀
마야(Maya)
튜브-자두
Brief & Clear

1980년대 후반 홀연 아이돌 스타의 무게를 벗고 '자유로운 예술'의 길을 택했던 이상은. 일본 도시바EMI에 적을 두고 미술과 음악을 병행하고 있는 그녀가 오랜만에 한국팬들 앞에 음악을 선보였다. 영화〈봉자〉사운드 트랙이란 부제가 붙긴 했지만 수록곡 전부를 그녀가 만들고 대부분을 직접 노래한 이상은의 앨범이다.

이상은은 95년 '공무도하가', 97년 '외롭고 웃긴 가게' 등의 음반을 통해 포크의 서정성과 자연주의에 동양사상의 깊이와 신비감을 더한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라이선스로 발매된 97년작 영어 앨범〈리 체(Lee Tzsche)〉는 팝 시장에서도 손색없는 그녀의 음악성이 잘 집약돼 있다.

〈쉬 원티드〉역시 이상은의 섬세한 감성과 영화적인 상상을 정갈한 편곡으로 엮어낸 수작이다. '펭귄(Penguins)'이란 프로젝트로 오랫동안 이상은과 작업해온 일본 뮤지션 타케다 하지무가 레코딩과 믹싱을 맡았다.

첫 곡 '성녀'는 규칙적인 리듬, 두 대의 기타가 들려주는 이질적인 화음이 신비로운 곡. '마야'는 읇조리는 듯한 황보령의 허스키 보컬과 뚜렷한 베이스 라인이 돋보이는 곡. 간헐적인 드럼 사운드도 독특한 맛을 더한다.

극 중 자두의 테마로 쓰인 '튜브'는 장구의 리듬 위에 단조로운 기타와 피아노, 보컬이 깊은 울림을 남기는 곡. 동서양 악기의 조화가 놀랄만치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이상은의 나지막한 고백이 연상되는 '브리프 앤드 클리어'도 매력적이다.

■ 20th/ 카시오페아(Casiopea)

▶ 수록곡 듣기
Freak Jack
Lucky Stars
Midnight Rendezbous
Asayake

〈20th〉는 지난해 일본 히비야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퓨전재즈밴드 카시오페아의 20주년 기념 콘서트 실황을 담은 앨범. 록과 재즈를 접목한 경쾌한 스타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주력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들의 음악세계가 두 장의 CD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카시오페아는 79년 '스릴·스피드·테크닉'을 모토로 출발한 밴드. 80년대 초반부터 리 리트나우어 등 세계 정상급 뮤지션들과 교류를 시작한 이들은 꾸준한 해외공연과 빌보드 재즈차트 상위권 진입등으로 일찌감치 '월드스타'로 발돋움했다. 96년에는 일본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한국 공연을 열기도 했다.

현재 유일한 창단멤버이며 팀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노로 잇세이(43)를 무카이야 미노루(키보드), 나루세 요시히로(베이스)의 3인조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선 80년대 팀의 황금기를 함께한 드러머 '아키라 짐보, 카시오페아의 창단 멤버였던 사쿠라이 테츠오(베이스) 등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첫 번째 CD에 수록된 '프릭 잭(Freak Jack)'과 '럭키 스타스(Lucky Stars)'는 지난해 발매한 데뷔 20주년 기념음반〈머티리얼(Material)〉의 수록곡이다. 98년 히트작 '드림 메이커(Dream Maker)'부터 79년 데뷔앨범의 '스페이스 로드'까지 20곡을 메들리로 편곡한 37분45초의 대곡 '플래시 백 메들리(Flash Back Medley)'는 앨범의 백미.

'게스트와 함께(With Guest)'란 부제가 붙은 두 번째 CD는 앞서 소개한 7명의 현·전멤버들이 함께 선보이는 퓨전재즈의 향연이 펼쳐진다. 카시오페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79년작 '미드나이트 랑데부(Midnight Rendezvous)'를 시작으로 사쿠라이 테츠오와 나루세 요시히로의 현란한 트윈 베이스가 인상적인 '엑센트릭 게임즈(Eccentric Games)', 빌보드 히트작 '아사야케(Asayake)' 등이 귀를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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