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의 투자 ABC] 주가 조정 언제 올지 알려면 유럽 은행주 눈여겨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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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시행한 저금리장기대출(LTRO) 정책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LTRO가 결정될 즈음에는 많은 이가 이 정도 영향을 예상하지 못했었다. 기대보다 효과가 컸던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1%의 저금리 대출을 받은 유럽 은행이 그 돈으로 과연 무엇을 했는지에 있다. 문제의 중심에 있던 이탈리아 은행은 매우 위험한 투자와 안전한 투자를 동시에 진행했던 것 같다. 이번 1차 LTRO에서 이탈리아 금융회사는 총 1157억 유로(약 172조원)을 대출받았다. 유럽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이 돈 가운데 상당 비율은 다시 ECB에 예금으로 재예치됐다. LTRO 직후 하루짜리 ECB 예금(금리 0.25%) 규모가 크게 늘어나자 LTRO가 유럽 금융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한 투자도 동시에 진행됐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발표하는 12월 대차대조표 수치를 분석해 봤다. 이탈리아 은행은 12월에 은행채를 495억 유로, 국채는 50억 유로 매입했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다. 이 물량은 상당 부분 신규 발행 물량을 인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이들이 자국 국채와 새로 발행된 금융채를 공격적으로 매수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돈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차익 기회를 노리고 채권에 투자했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때는 대형 금융회사가 망할 수도 있었던 ‘신뢰의 위기’가 지속되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지난 1월 조지 소로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탈리아 은행이 이탈리아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유럽 재정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자국의 채권에 투자했다가 실패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붕괴’ 수준의 충격이 발생한다는 뜻이 된다. 때문에 채권 투자에 참여하든 그렇지 않든 실패했을 때 받는 충격은 거의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12월에 이탈리아 은행은 철저하게 자국의 금융채와 국채만을 샀다. 이탈리아 은행만 그런 것도 아니다. 스페인·아일랜드 등 유로존 국가에서도 ECB 대출을 받은 은행이 자국의 은행채와 국채를 공격적으로 매수했다.

 이런 구조로 LTRO 정책은 금융시장 안정에 큰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차 LTRO 정책이 시행되는 2월 29일 이후에도 유럽 은행의 채권 매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럽 은행주의 추가 상승을 점쳐 본다.

 많은 이가 올해 국내 증시가 오르는 이유를 유럽발 LTRO에서 찾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유동성이 공급됐기 때문이 아니다. 유럽의 은행이 그 돈으로 자국의 금융채와 국채를 매입하고 있기 때문에 LTRO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중앙은행이 제공한 돈으로 금융채를 매수하면 은행의 막대한 자금 조달 수요가 충족돼 은행주가 오른다. 따라서 이번 상승장에서 유럽 은행주가 고점을 치면 한 차례 조정이 나올 수 있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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