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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의 독립 레이블 붐

중앙일보

입력

우리는 각종 매스컴을 통해 가수와 음반사간의 의견충돌로 빚어지는 불미스런 사건들을 자주 보아 왔다. 인세 문제나 계약 기간 불이행이 표면으로 드러나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양측의 이해관계가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음악 하는 사람은 자존심을 죽여가면서까지 상업성만 따라갈 수 없는 노릇이고, 음반사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앞설 수 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뮤지션이 레이블을 직접 설립하여 비즈니스를 겸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본격적인 계기를 만든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멤버들이었다. 양현석의 경우 '양군기획' 을 만들어 킵식스.지누션.원타임은 물론 자신의 솔로 앨범을 제작했다.

이주노 역시 '아이엔지' 를 만들어 영턱스클럽.허니 패밀리와 자신의 솔로 앨범 등을 만들어 왔으며, 서태지 역시 '괴수대백과사전' 이라는 독립 레이블로 자신의 컴백 앨범을 선보인 바 있다.

듀스 출신 이현도의 D.O.프로덕션, DJ DOC의 프리스타일, 김건모의 건음기획, 델리 스파이스의 기타리스트인 김민규의 문라이즈, 힙합 뮤지션 레파홀릭의 로우독 레코드, 조피디의 스타덤 외에도 많은 수의 레이블이 성업중이다.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뮤지션이 음반사 간부를 겸하는 예는 이제 외국에선 더 이상 신기하거나 새로운 일이 아니다.

림프 비즈킷의 보컬리스트 프레드 더스트는 세계 유수의 대형 레이블인 인터스코프의 부사장 자리에 앉았고, 마돈나의 매버릭을 통해서는 캔들박스.데프톤스 등 많은 록 밴드들이 배출됐다.

독일 출신 알렉 엠파이어의 디지털 하드코어와 배드 릴리젼의 에피타프는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른 전문 레이블이다.

뮤지션들이 직접 음반 비즈니스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인 자극제는 90년대 들어 음악 매니어들이 보다 분명하고 전문적인 성향의 음악을 원하게 된 것과 인터넷의 활성화로 생긴 시장구조의 변화로 풀이된다.

여러 가지 음악들을 취급해야 하는 대형 레이블들이 놓치는 틈새 시장을 전문성으로 공략하고 인터넷을 통해 팬들과 실시간 반응을 주고 받는 전략이야말로 뮤지션 스스로가 주인인, 독립 레이블들의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아직까지는 외국에 국한되지만 대형 레이블들 스스로가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음악인들과 비교적 자유로운 계약 방식을 택하게 됐다.

얼터너티브 아티스트 벡과 뉴욕의 전설적인 밴드 소닉 유스는 대형 메이저 레이블 소속이지만, 실험성이 강한 작품은 자신들이 설립한 인디 레이블로 발표하고 있다(김민규의 문라이즈가 이와 흡사한 방식을 채택한 음반사이다).

'음악인들에겐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족해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는 지적도 적지 않지만, 독립 레이블의 붐은 상업성 보다는 음악성 있는 작품을 양산해 낼 수 있고, 뮤지션이 꼭 필요한 부분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다.

게다가 앨범 한 장 내주는 조건으로 5년 전속에 쥐꼬리만한 계약금을 받고 그 후로는 인세 구경 한번 못하게 되는 '노비문서' 에 사인을 요구했던 기존 음반사의 횡포도 이를 계기로 다소 변화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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