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연금 하나도 안 든 베이비부머 156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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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암동에서 족발 가게를 운영하는 A씨(51·여)는 ‘노후(老後)’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 없이 남편(56)과 노점상부터 중국음식점, 맥주 호프점을 거쳐 지금의 족발 장사까지…. 평생 성실히 살았지만 아직도 손에 잡히는 돈이 없다. 자영업자이다 보니 퇴직연금이 없고,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도 들어놓은 게 없다. 연금 없이 노후를 맞아야 할 A씨는 “왜 연금에 가입할 생각을 안 했겠느냐”며 “한창 벌어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닥치지도 않은 노후를 위해 돈을 떼어낼 엄두가 안 났다”고 말했다.

 A씨 부부의 가장 큰 짐은 자녀 교육비다. 새벽 오토바이 배달까지 해도 서울 소재 사립대에 다니는 아들·딸의 학비 대기가 빠듯하다. 아이들이 중·고교에 다닐 때는 한 달에 50만~100만원씩 드는 사교육비에 허덕였다. A씨는 “남들 다 보내는 학원에 안 보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몇 년 사이에 수천만원씩 오른 아파트 전세보증금도 힘에 부쳤다. 1~2년 전부터는 직장에서 은퇴한 50대 베이비부머들이 너도나도 자영업에 뛰어들어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A씨의 남편은 “막내(아들)가 대학을 마치는 5년 뒤에나 노후를 위해 돈을 모을 여유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A씨 부부 같은 베이비부머 5명 중 1명은 연금 없이 노후를 맞아야 할 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베이비부머 2250명을 전화면접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 ▶직장 퇴직 이후 받는 퇴직연금 ▶민간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개인연금 보험 중 어느 것 하나에도 가입하지 않은 무(無)연금자 비율이 22%(156만 명 추정)에 달했다. 특히 전업주부가 많은 여성 베이비부머는 32.5%가 무연금 상태였다. ‘연금 3종 세트’에 모두 가입해 노후 소득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갖춘 베이비부머는 9.6%에 불과했다. 또한 베이비부머의 34.1%는 본인이 노후에 필요하다고 생각한 수준보다 수입이 적어 노후 생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베이비부머의 노후 대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사교육비와 높은 집값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베이비부머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고교생 자녀가 53만4000원(월 생활비의 17.3%), 대학생이 40만4000원(월 생활비 14.4%)이었다. 부동산은 전체 자산 가운데 76%를 넘어 처분해서 쓸 수 있는 돈이 적었다. 대출도 평균 5700만원씩 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정모(52)씨는 “열심히 벌어서 집 사는 데 다 쏟아부은 것 같다”며 “노후 자금이 부족하면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준비 없이 노후를 맞고 있는 베이비부머를 위해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소득과 자산 ▶건강 ▶사회적 관계 ▶여가 등 4개 영역 총 30여 개의 ‘노후 준비 지표’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 지표를 활용해 다음 달부터 전국의 국민연금 행복노후설계센터에서 상담 서비스도 진행한다.

정경희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연금 베이비부머는 이제부터라도 노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빈곤 노년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자식에게 올인 하지 말고 자신의 노후에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baby boomer)=6·25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도입된 63년 사이 태어난 세대.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기준 국내 베이비부머는 총 71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6%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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