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국민연금 사외이사’ 첫 단추 잘 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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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김광기
선임기자

“분명 가야 할 길인데 시간이 촉박하다.”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은 신중해 보였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국민연금에 사외이사 파견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접한 뒤, 확인 취재를 위해 그를 지난주 만났을 때다. ‘확률은 50% 정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주일이 지난 지금, 국민연금의 행보가 확 달라졌다. 속도감이 느껴진다. 전 이사장은 “사외이사 추천에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 진척되고 있다. 이번에 꼭 해야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하나금융도 “시간을 늘려 3월 초까지 기다릴 생각”이라고 했다. 확률이 90% 정도로 높아졌다. 국민연금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보다 여론의 힘이다. 때마침 최태원 SK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불거진 논란이 도움이 됐다. 국민연금의 소극적 행동을 비판하며 “앞으로 보유 주식 의결권 행사에 적극 임해 달라”는 주문이 잇따랐다. “이제 재벌과 금융그룹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졌다.

 사실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에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이미 2009년 ‘책임투자 및 주주권리 행사 방안’에 대한 외부 연구용역을 마쳤고, 그 뒤 이를 놓고 각계 전문가들과 심층 토론을 벌여 왔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기금(캘퍼스) 등 선진국 연기금의 사례를 토대로 국내에 적용할 ‘가이드라인’ 초안도 만들었다.

 다만 타이밍이 조심스러웠다. 서둘렀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정부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 재벌 때리기에 동원된 것이냐?” 등의 역풍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금융의 자청이 들어왔고 여론도 빠르게 호전되자 용기를 내게 된 것이다. 관건은 시장이 공감할 투명·공정한 절차, 그리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사외이사의 선정이다. 전문가들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시장은 이를 제대로 평가할 안목을 갖추고 있으며 국민연금도 그런 사실을 직시하고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나의 현실적 방안으로 거론되는 게 ‘국민연금 사외이사’에겐 보수를 거의 주지 않거나 사회복지재단 등에 자동 기탁하도록 하는 것이다. ‘돈 욕심’에서 벗어나 공익적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외부 권력을 등에 업은 낙하산 사외이사를 막을 현실적 처방이다. 경영간섭의 소지가 없도록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후보를 복수 추천하고, 그 활동을 감사위원회에 집중토록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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