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왜 다시 강소국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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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경호
정책팀장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선 강소국(强小國) 벤치마킹 열풍이 불었다. 인구·내수시장은 작지만 적극적인 개방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면서 국가경쟁력 순위도 높았기 때문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의 성공 비결을 찾아 한국의 ‘신사유람단’들이 앞다퉈 이들 나라를 직접 찾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결론 내린 강소국의 성공 비결은 ▶작은 정부 ▶규제 완화 ▶우수한 인적자원 육성 ▶유연한 노사관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런 강소국이 높은 대외의존도 때문에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부각됐다. 강소국의 일원이었던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오히려 한국처럼 소규모 개방경제이긴 하지만 제조업 기반이 강한 경제가 위기에 강한 일면을 과시할 수 있었다. 경제·인구 규모로 볼 때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한 한국이 참고하기엔 강소국의 경제 규모가 작아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게 강소국 따라 배우기 열기는 급속하게 사그라졌다.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유럽 모델이 유럽 재정위기로 다소 빛이 바랜 가운데 정부가 다시 강소국 얘기를 꺼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강소국 경제의 잠재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럽의 강소국 모델처럼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켜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증세는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결국 서민생활의 부담이 된다는 우려도 적시했다.

 재정부는 “국제 신호체계를 무시한 정책의 인기영합주의, 급격한 유턴정책 등은 국가 신인도를 저해하고 기업의 국제경쟁력 저하, 투자 위축을 유발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고 근로의욕을 높여주는 조세정책이 중요하다며 “국제조세 경쟁구도에서 과도한 누진율은 근로의욕 저하, 투자 위축, 자본 유출 등을 초래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우려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부는 소득세·법인세 등의 증세 논의와 선심성 공약에 일침을 놓은 것이다.

 강소국 재조명은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보고서엔 없는 얘기지만 북유럽 강소국 스웨덴의 사례는 많이 회자됐다. 1938년 사민당 정권과 재벌그룹인 발렌베리가 ‘살트셰바덴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발렌베리는 기업지배권을 인정받는 대가로 일자리 제공과 기술 투자에 힘쓰며 높은 소득세를 내는 등 ‘국민경제에 대한 공헌’을 사민당과 약속했다. 보고서는 “이념적으로 스펙트럼이 다양한 집단 간의 신뢰 구축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포퓰리즘적 시각보다는 생산적인 진보와 개혁적인 보수가 노력해 사회적 합의로 공동의 목표를 도출하고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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