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심권호 체중의 4배 드는 괴력 단련

중앙일보

입력

세계 레슬링계에는 두명의 '거인' 이 있다.

그레코로만 1백30㎏급 알렉산데르 카렐린(러시아)과 한국의 54㎏급 심권호다.

카렐린이 1987년 이후 국제무대에서 14년 동안 무패 가도를 달리며 올림픽 3연패를 이룬 중량급의 거인이라면 심권호는 단연 경량급의 거인이다.

심은 1㎏ 차이에도 엄청난 힘 차이가 나는 체급 경기에서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두 체급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그랜드슬램이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제패하는 것을 말한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등 48㎏을 평정했던 심권호는 국제레슬링연맹(FILA)이 올림픽 경기 체급을 10개에서 8개로 줄이면서 체급이 없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체중을 무려 6㎏이나 올려 무거운 선수들과 맞붙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가능성이 없다" 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들의 예상대로 심권호는 54㎏으로 체급을 올려 97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으나 무명의 서동현에게 패했다. 기술은 누구도 당해낼 자신이 있었지만 파워의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후 심권호의 지상 과제는 '파워 늘리기' 였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입에 단내가 나도록 줄타기에 몰두하는 한편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힘을 불렸다.

피나는 훈련을 통해 근력을 키운 심은 몸무게의 4배 가까운 1백90~2백㎏을 들어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심권호는 98년 54㎏의 맹주였던 후배 하태연(삼성생명)을 꺾고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리고 9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뒤 같은해 아시안게임과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잇따라 제패했다.

그러나 지난해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벌어진 대표 선발전에서 심권호는 하태연에게 두차례 패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하태연은 국가별로 주어지는 이 체급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이후 시드니올림픽 54㎏급 태극마크를 누가 달게 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심권호는 지난해 벌어진 1차 선발전에서 하태연에게 졌지만 올해초 벌어진 2차 선발전에서 승리한 뒤 지난 4월 최종 선발전에서도 하를 꺾고 천신만고 끝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전인미답의 두 체급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작은 거인' 심권호는 "대표에서 탈락한 이후에도 태릉선수촌에서 함께 합숙하며 스파링 파트너를 자청해 준 후배 하태연에게 금메달을 나누고 싶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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