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디지털 시민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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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50억 달러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하는 페이스북 기업공개 신청이 화제다. 페이스북은 지난 8년 동안 약 8억50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인터넷 사용자를 촘촘한 사회관계망으로 묶어내고 있다. 이들 사용자는 페이스북과 연결된 약 700만 개의 외부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고 듣고 읽고 소통한다. 이처럼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함께 웃고 즐기고 때론 분노하고 애통을 토해내는 거대한 생활공간으로 성장했다. 반면 한국 사회는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철 지난 슬로건에 취해 있으면서도 인터넷 사용자를 괴담과 게임에 사로잡힌 시커먼 얼굴의 철부지로 간주해 왔다. 진짜와 가짜가 주민번호 하나로 구별되고, 설(說) 풀기 좋아하는 블로거는 명예훼손이라는 으름장에 벌벌 떨고 있다. 디지털 사회의 진화를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아날로그 저작권법이 인터넷 사용자를 향해 광범위한 수사망을 펼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쓸쓸한 인터넷 현실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교양과 정돈된 질서를 자랑하는 아날로그 토착민이 다수의 디지털 사용자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UCC와 짤방에 날을 새던 사용자가 때론 (준)전문가가 되어 네트워크에서 사랑받기도 하고, ‘ㅋㅋㅋ’ ‘ㅎㅎㅎ’로 속내를 표현하는 사용자가 트위터에서 냉철한 정치논객이 되어 다수 팔로어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디지털 사회의 구성원 규모는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실명제·저작권법·심의 등의 날 선 바리케이드를 뛰어 넘고자 한다. 미국 의회가 제정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온라인 저작권 침해 금지 법안(SOPA)’과 ‘지적재산권 보호법안(PIPA)’에 대한 저항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지난 1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의 침묵은 한국 사용자의 디지털 시민권에 대한 무관심에 다름 아니다.

 자유, 민주주의, 권리/소유권! 이 세 가지는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얻어낸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다. 1789년 프랑스의 어두운 골목길에서 태어난 ‘표현의 자유(free speech)’는 교양과 질서를 앞세운 앙시앵레짐의 정신적 억압을 무너뜨린 인류사의 위대한 성과다. 이때 함께 태어난 것이 ‘시민(citizen)’이다. 표현의 자유를 통해 인간은 출신과 지위와 무관하게 마침내 자신의 정신세계를 공개적으로 떠들 수 있게 되었다. 파리의 골목길에는 육두문자가 넘쳐 났고, 때론 확인되지 않는 괴담이 시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도 했다. 피에 굶주려 이성을 잃어버린 공포의 단두대로까지 이어진 ‘표현의 자유’는 그러나 그 이후 200년 동안 유럽 대륙의 혁신과 문명의 진화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되었다. 때문에 신분과 지위, 그리고 이른바 ‘교양 수준’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시민의 권리는 디지털 시대에도 온전히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다. 이것이 일부 IT기업 및 통신기업 지원, 벤처육성 등 산업정책보다 우선한다. 온라인에서 각자의 다양한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다채로운 혁신의 문화 없이는 디지털 산업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총선과 대선이 함께 열리는 2012년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가능하다. 때문에 기성 정당들은 SNS 전문가를 영입하고, 자체 SNS 역량을 강화하고, 모바일 참여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디지털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서 인터넷과 통신망에서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사용자)권리’가 디지털 사회의 심장이라는 것을 결코 정치권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심장을 뛰게 하지 못하는 SNS 정책과 홍보는 낡은 정치 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