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번째 편지〈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 마지막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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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책상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오래 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96년 2월과 3월에 걸쳐 중국 실크로드를 여행할 때 찍은 것입니다. 그새 5년 7개월이 지났는데 그 사진을 찍던 아주 잠깐의 순간이 소름끼칠 정도로 고스란히 되살아납니다.

그 사진은 난주에서 주천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타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우연히 찍은 것입니다. 그때 막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플랫폼의 풍경이 딴세상처럼 변하면서 일시 정지 현상을 경험했습니다. 나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눈에다 대고 얼른 창 밖의 풍경을 담아놓았습니다.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서 인화를 해보니 아주 좋은(?) 사진이었습니다. 파스텔톤으로 흐리게 찍혀 있는 사진 안에는 모두 다섯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모두 다른 길로 흩어져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선 한쌍의 모녀가 흰 비닐봉투를 들고 제 오른쪽으로 비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인민복 차림이고 아이는 녹색과 빨간색의 줄무늬가 있는 파카를 입고 희미해서 잘 안 보이긴 하지만 웃고 있는 듯합니다.

또 한 사람은 회색 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인데 왼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서서 반대편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공안으로 보이는 뒷모습의 사람이 어깨를 뒤로 펴고 걷고 있습니다. 빨간 점퍼에 쑥색 치마를 입은 중년의 여자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사진에는 마치 공안원을 뒤따라가는 듯이 보이지만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전형적인 겨울 역 구내의 풍경입니다. 각자 헤어져서 떠나고 또 먼빛에서 마중나온 누군가를 발견하고 웃으며 서둘러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때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해 역 구내는 갑가기 걷잡을 수 없는 적막감에 갇혀 버립니다. 일시 정지 현상은 그 불가해한 순간에 찾아온 적막감의 자취였던 것입니다.

며칠째 이 사진을 식탁에 올려놓고 밥을 먹을 때마다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 사진을 찍을 때의 심상이 되살아나 가슴 한쪽이 시큰해지곤 했습니다. 실크로드는 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또 사막은 난주로부터 펼쳐집니다. 곧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그 가슴 떨리는 순간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합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내가 말입니다. 그 황홀한 무(無)의 세상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줄곧 동경했던 장소였으니 그때의 심정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시겠죠.

...오늘 나는 다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밤새 꿈결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침에 눈을 뜨자 사방이 적막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우물 속의 느낌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어딘가로 떠날 때마다 나는 우물 속에서 기어나가는 느낌이었는데 마침 그 느낌이 손님처럼 찾아와 있었던 것입니다. 밤새 들리던 발자국 소리의 정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정오쯤에 밖에 나갔다가 아파트 현관에 붙어 있는 시계가 4시 30분에 멈춰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공무수행〉이라고 써붙인 흰 트럭을 목격했습니다.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나는 너무 오랫동안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도 안전하게 그리고 너무도 태연하게. 몰래 몸부림치며.

곧 당신이 서울에 도착할 텐데 그 전에 받아보시라고 서둘러 쓰고 있습니다. 다시 나는 기어이 떠나야만 하겠고 다시 또 먼 곳들을 돌아와야만 하겠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나왔던 많은 장소들과 그것이 포함하고 있는 풍경들이 떠오릅니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 그 시간의 틈바구니 사이에 숨어 있던 야릇한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곧 빨려들어갈 듯 청명했던 하늘. 푸른 나뭇잎 사이에서 번져오르던 따뜻한 정념과 그때 땅바닥에서 흔들리고 있던 존재의 가벼운 그림자들.

어디로 가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신이 없는 곳을 찾아가 오직 추위와 맞서며 절대 고독 속에 잠겨 있고 싶습니다. 더 이상 새로워질 것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에의 선고와 같습니다. 공기와 대기와 하늘을 바꿔 고행하다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다니고 있는 거리 한모퉁이에서 점점 작아져 마침내는 소리없이 쭈그러들고 말 것만 같습니다.

그 공동(空洞)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삶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의 밤과 네온사인의 터질 듯한 유혹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속에서 피가 마르는 느낌은 견딜 수 없습니다.

오후 4시에 적막 속에 앉아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합니다. 달걀처럼 따뜻하고 매끈한 당신의 이마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당신의 이마를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한 안도감에 젖어 있곤 했습니다. 그리고 불가해한 당신의 그 뒷모습.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만져지지 않던 그 완강한 존재감. 절망감. 부동의 한 존재를 그처럼 뒤에서 눈여겨보며 나는 어느덧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랑하면 더 이상 다가가면 안되는 법입니다. 그것은 결코 완성되거나 확인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떠나기로 혹은 당신과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갖고 있던 영상들은 대개가 당신에게 투영된 다음이고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나에 대한 희미한 존재감뿐입니다.

존재의 성(姓)을 바꿔보려는 기대를 안고 떠납니다. 낯선 사람이 되어 돌아와 다시 당신과 해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서로 익숙해지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안심하기 위하여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항상 다투고 있어야만 하고 더 이상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한번쯤 떠나 있어야만 합니다.

모든 짐을 놓고 떠납니다. 열쇠는 우유통에 넣어두겠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 한번쯤 들를지 몰라 남겨둡니다. 고백을 하자면 어쩌면 당신에게 투정을 부리고 싶지 않아 떠나는지도 모릅니다. 남자들이란 결국 여자에게 투정을 부리는 존재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이 날마다 그대 이마에 깃들기를 바라며. 줄여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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