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수영] 수영 최후의 승자는 게리 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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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포포프(28.러시아)도, 페테르 반 덴 호헨반트(21.네덜란드)도 아니었다.

시드니올림픽 수영에서 최후의 승자는 게리 홀 주니어(26.미국)로 기록됐다. 마리화나 흡연으로 인한 자격정지와 당뇨병도 홀의 금메달 집념을 꺾지 못한 것이다.

22일 밤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남자자유형 50m 결승.

`물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가리는 자유형 50m는 육상 100m와 함께 올림픽 최고의 빅카드로 꼽히는 종목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 경기에 앞서 홀은 여느 때처럼 자신이 소개되자 `록키'처럼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는 쇼맨십을 부렸다.

개막 전 "호주수영을 때려 부수자"는 홀의 선동에 잔뜩 약이 올라있던 1만7천호주 관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지만 오히려 홀은 두 손을 맞잡은 뒤 좌우로 흔들어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어느새 출발 총성은 울렸고 경기는 홀과 흑백 혼혈아인 앤소니 어빈(19.미국)의 공동 우승으로 끝났다.

미국이 매트 비욘디가 우승한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2년만에 자유형 50m 정상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50m 3연패 신화에 도전하던 포포프와 올림픽 사상 첫 자유형 50m, 100m, 200m 3관왕을 노리던 호헨반트의 꿈도 물거품이 돼 버렸다.

홀 주니어로서는 특히 4년전 안방에서 포포프에 50m, 100m 금메달을 내준 뒤 얻은 `2인자'란 꼬리표도 떼어버리게 됐다.

미국의 자존심을 곧추세운 홀은 98년 약물 복용으로 3개월 자격정지를 당하고 당뇨증세로 하루 8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는 등 거듭된 불운 속에서도 아버지를 위해 이날 세기의 대결을 벼르고 별러 왔다.

아버지인 게리 홀 시니어는 72년 뮌헨,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은, 동메달에 그쳤던 전 국가대표.

따라서 홀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대신 이뤄내 `오랜만에' 아들 노릇을 한 셈이 됐다.

홀은 "당뇨병, 마약 등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될 백만가지의 이유가 있었다"며 "그러나 정상에 올라보니 정말 스릴이 만점"이라고 익살을 떨었다. (시드니=연합뉴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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