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세계 표준특허’ 부메랑 맞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7면

삼성전자가 애플의 공격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특허가 도리어 삼성의 발목을 잡을 판이다. 역설적이지만 전 세계가 표준으로 삼을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게 문제가 됐다. 이렇게 누구나 쓸 수밖에 없는 특허는 남들이 쓰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안 되는데, 삼성전자가 혹시 특허권을 내세워 공정한 경쟁을 방해했는지 조사하겠다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나선 것. <본지 2월 1일자 12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애플의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삼성의 3세대(3G)통신 표준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해 손해를 봤다며 제품의 판매금지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삼성은 “우리 땅을 밟지 않고는(특허를 쓰지 않고는) 휴대전화를 만들 수 없다”며 소송에서 이길 것을 자신했다.

그러나 EU의 시각은 달랐다. 도리어 삼성전자가 소송을 낸 것을 기화로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EU는 표준으로 인정된 필수적 특허 기술을 가진 특허권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프랜드(FRAND)’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즉 특허 침해를 이유로 판매금지를 시도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로열티 지불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다른 특허권자들과 함께 1998년 FRAND 의무를 지키겠다고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에 약속한 바 있다. EU 관계자는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특허를 무기로 소송을 제기한 데 착안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삼성이 지닌 표준 특허의 강력한 위력이 오히려 삼성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상황인 것이다.

 삼성이 유럽에서 벌이는 애플과의 소송에서 공격 무기로 삼는 표준특허는 10여 개다. 만약 통신 표준특허를 포기하게 된다면 이모티콘 입력과 비행모드 전환 아이콘 등 소수의 사용자환경(UI) 관련 특허만 갖고 애플과의 소송전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EU는 최근 정보기술(IT) 업계 공룡 기업들이 각자의 표준특허를 동원해 지적재산권 소송을 벌이는 상황을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IT 분야에서 미국이나 한국에 상대적으로 열세인 EU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각도 깔려 있다. 표준특허권을 마음껏 휘두르도록 내버려뒀다가는 EU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다.

 통신 표준특허를 앞세운 삼성의 소송 전략은 유럽 법원에서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독일 만하임법원은 삼성의 표준특허 2건을 “애플이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삼성전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법원으로부터 신형 아이폰4S에 대한 판매금지 허가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또 독일 뒤셀도르프법원은 갤럭시탭10.1 등의 판매금지가 부당하다며 삼성이 낸 항소심을 기각했다.

  1일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2만8000원(2.53%) 내린 107만9000원에 장을 마쳤다.

프랜드(FRAND)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일 것(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의 약자. 한 기업의 특허가 세계 기술 표준으로 채택될 경우 다른 기업이 이를 사용하는 데 특별한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프랜드 원칙에 해당되는 표준특허에 대해서는 이를 사용하는 기업이 특허권 사용료 협의 없이도 제품을 제조·판매할 수 있다. 물론 나중에 특허 보유 기업과 협상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표준특허를 가진 기업이 경쟁업체의 제품 생산을 원천 봉쇄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이런 원칙을 만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