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누가 .리치몬드 과자점. 문 닫게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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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추억 같은 것 말고, 돈 한 가지만 얘기해 보자. 지난달 31일 문을 닫은 홍익대 앞 ‘리치몬드 과자점’ 말이다. 대한민국 제빵 명장 권상범 파티시에가 30년간 일군 가게를 접었다.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재계약 불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임대료 문제였다. ▶<본지1월 31일자 2면>

 이를 두고 ‘경제 논리에 장인이 밀렸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과연 경제 논리에는 맞는지 의문스럽다. 이번 일로 이익을 보는 이가 안 보여서 하는 말이다.

 권상범 명장은 따질 것도 없다. 그의 손실은 점포가 벌어들이던 이익보다 클 것 같다. 그는 폐점 이후 홍대점 직원을 한 명도 안 내보내고 성산·ECC점과 생산공장으로 돌리겠다고 한다. 인건비 부담이 늘 것이다.

 그러면 그 자리에 들어서는 엔제리너스 커피는 득을 봤을까. 인기 빵집이 닦아놓은 터인 데다 지하철 홍대역 앞이니 방문객은 많을 거다. 하지만 리치몬드보다 높은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니 고수익이 보장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엔제리너스 스스로도 “임대료가 비싸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을 낸다”고 말했을 정도다. 더 큰 문제는 브랜드 이미지 실추다. 아무리 ‘소비자는 망각의 왕’이라지만 30년 정든 가게를 잃은 고객, 사정을 들은 대중의 머릿속에 ‘엔제리너스’가 어떤 이미지로 자리 잡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리치몬드 홍대점에는 주말 900명, 평일 600명씩 손님이 왔고 마지막 영업일에는 2500명이 왔다.

 더구나 요즘은 대기업 2, 3세들이 세간의 지탄으로 진출했던 빵집·커피숍 사업에서 철수하는 추세다.

 건물 주인은 계산상으로 임대료 상승분만큼 이익을 볼 것이다. 하지만 ‘전통 있는 가게’라는, 오랜 기간 쌓은 보이지 않는 자산을 잃었다. 특별할 것이 없는 건물이 된 것이다. 먼저 자리 잡은 엔제리너스 점포는 186m 떨어져 있다. 지하철역 앞 번화가이니 ‘30년 빵집 추억’ 같은 것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화여대 앞 상권을 보라. 지하철 초역세권에 유명대학 앞이지만 가게가 하나둘 문 닫고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들만 있어서 그렇다. 점점 ‘프랜차이즈화’가 진행되는 홍대 앞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리치몬드 과자점 전체 매출이 연 35억원이다. 제과학원도 있다. 홍대점 문 닫았다고 권상범 명장, 불쌍하게 볼 이유는 없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30년 명인 빵집의 폐점으로 명장은 주요 터전을, 대기업은 이미지를, 고객은 단골가게와 추억을, 건물은 특별함을 잃었다. 창출된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리치몬드 폐점의 ‘승자’는 과연 누구인가.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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