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대기업, 에인절 투자 나서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박재환(左), 강병오(右)

청년 창업가들이 투자에 목말라 한다는 사실은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2010년 중소기업청이 5000개 창업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장 큰 애로점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자금 조달’(74.1%)이었다. 이에 중기청은 지난해 1916억원이었던 청년창업 관련 예산을 4165억원으로 늘리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규모는 둘째치고 예산의 집행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내 청년 창업 예산은 대체로 창업 기업에 수천만원씩을 낮은 이자에 빌려주는 식이다. 이를 놓고 중앙대 박재환(산업창업경영대학원 창업사업단장) 교수는 “다수 청년 사업가들에게 그저 돈을 뿌리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웬만한 업체에 다 돈을 주면 창업 기업들이 그저 정부 돈에 의존해 그럭저럭 연명이나 하려는 식의 모럴 해저드(도적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보다는 창업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려 이를 악물고 노력하도록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처럼 골고루 뿌리는 창업 지원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창업·투자 생태계를 만들 수 없다”며 “정부 예산 역시 에인절투자처럼 될성부른 기업을 선별해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될성부른 기업이란 다시 말해 착착 성장 가도를 달리며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낼 회사다.

 차원용 아스팩기술경영연구소장(고려대 겸임교수)은 국민연금이 에인절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자산 규모 350조원인 국민연금이 그 0.1%인 3500억원만 할애하면 당장 연간 300억원대인 국내 에인절 투자가 10배 이상 늘어난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은 총 자산의 1% 이상을 에인절 투자에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 소장은 “에인절 투자는 상장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이익을 내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리는 초장기 투자이기 때문에 국내 벤처캐피털이 손대기를 꺼린다”며 “이에 비해 국민연금은 오랜 기간 영속할 장기 투자자라는 점에서 에인절 투자와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강병오 FC창업코리아 대표(창업학 박사)는 대기업들이 에인절 투자를 ‘사회 공헌’의 하나로 인식하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에인절 투자는 미래 경제의 대표 선수가 될 나무(기업)에 양분과 물을 주는 동시에 일자리를 늘리는 활동”이라며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을 사회 공헌에 쏟는 대기업들이 일부 재원을 에인절 투자에 돌렸으면 한다”고 권했다.

◆특별취재팀=장정훈·채승기·김경희·노진호·이가혁·하선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