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아시아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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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 총재

흔히 올해를 흑룡(黑龍)의 해라고 부른다. 고요하면서도 현명하고, 또 세심한 변화가 나타나는 한 해가 된다는 이야기다. 아시아의 바람과는 달리 올 한 해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가 급변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불확실성도 점차 커진다.

 지난 2년간 아시아 개발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아시아 지역은 2008~2009년 ‘세계 대공황’을 벗어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0년 9%대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은 물론 앞으로 경제성장의 기틀이 될 지속 가능한 경기회복을 이뤄냈다. 지난해 역시 그랬다. 유로존이 재정 위기로 고통 받고 미국의 경제 회복 역시 더뎠지만 아시아는 평균 7.5%의 강한 성장세를 보였다.

 아시아 경제에 가장 큰 위험을 들자면 유럽발 금융위기의 확산 또는 미국 경기침체의 장기화 둘 중 하나다. 시장 주체들의 변덕 역시 주요 리스크다. 투자자들은 장기적인 트렌드보다 단기 이슈에 휘둘린다.

 만일 유로존 위기로 유럽 각국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전 세계 경제 위기 확산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단기적으로 아시아와 신흥성장국들은 자금이 마르면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아시아에 투자된 자금은 유럽 은행으로 되돌아가고, 미국 은행들 역시 유럽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탄을 끌어 모을 것이다. 또 다른 금융위기라도 발생한다면 그 여파는 아시아에도 몰아친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가 외부적인 요소 때문에 재정적으로 취약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많은 아시아 국가가 흑자 구조를 이어가는 데다 부채 규모도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 차입금도 높지 않고, 외화보유고가 탄탄하다. 부실채권 비율도 낮고, 은행들의 자본 구조도 튼튼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아시아 지역이 작금의 금융위기 사태에서 운신의 폭이 좁지 않다는 점은 명백하다. 아시아 각국 경제당국은 거시경제적인 도구를 통해 빠르고 단호하게 지역적 협력을 바탕으로 경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2008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아시아는 서방 경제 위기와는 결코 별개가 될 수 없다.

 유럽은 아시아 지역이 1997~98년 금융위기를 해결했던 과정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아시아 각국 정부는 재무 구조, 그중에서도 뱅킹 시스템 개혁을 위해 많은 정책 도구를 도입했다. 통폐합은 물론이고 구조조정까지도 감수했다. 고통스러웠지만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이 된 과정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아시아 자본시장은 충분한 예금과 재정적 건전성을 회복했다. 유럽에도 인고(忍苦)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예측에 따르면 2050년께 아시아 지역의 경제 규모는 전 세계의 52%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기적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이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고속 성장의 부작용이다. 중국에서는 지니계수가 90년 25.6이던 것이 2005년에는 34.8까지 성장했다. 중국에서 80~90년대 경제는 성장했지만 불평등은 완화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장기적 성장이 저해된다.

 따라서 아시아 각국 정부는 성장에 방점을 찍되 그 과실을 널리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성과 서민, 소외 계층까지도 챙길 수 있어야 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심화되는 고령화 문제 역시 사회적 보호가 시급한 사안이다. 보건과 교육 접근권 역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 구조가 건전해지고 세계 경제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유럽 역시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 문제를 겪을 것으로 생각된다. 음력으로 흑룡의 해에 접어들었다. 아시아가 흑룡의 기운을 빌려 세계 경제를 고요하면서도 현명하고 세심하게 이끌어줄 수 있을까.

구로다 하루히코 아시아개발은행 총재
정리=이현택 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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