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작곡가의 단순소박한 음악 그게 이상스러운 내가 이상한 건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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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호 27면

어릴 때 꿈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였다. 그게 멋져 보여서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 성동구청에서 시행한 ‘고민하는 청소년상’에 뽑혀 대형 브로마이드 사진모델을 한 적도 있다. 늘 미간을 찡그리고 다녔던 탓이다. 하지만 포기했다. 아무나 이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한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 꽤 긴 세월 방송에서 활동한 터라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 온 셈인데 다들 멀쩡했다. 누가 될까 봐 이름은 거명 못 하겠는데, 한국에서 괴이쩍은 인물의 대명사 격으로 여겨지는 분과도 하룻밤 술자리를 나누고 내린 결론인즉 ‘멀쩡한 생활인이구나’였다.

詩人의 음악 읽기 에리크 사티

이상한 인간형은 책이나 예술작품에서만 그려지는 환상이 아닌가도 싶다. 그래서 실상이 정말 궁금해지는 인물이 프랑스 작곡가 에리크 사티(위 사진)다. 세상에서 사티처럼 특이한 인간으로 자주 언급되는 예가 또 있을까. 사티의 음악이래야 주로 BGM용으로 쓰이는 피아노곡 ‘짐노페디’ 정도가 들려올 뿐이지만 그의 생애와 행적은 온갖 예술서적에 놀라울 정도로 반복해 등장한다. 작가 박명욱은 그런 사티를 두고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온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적확한 수식이 아닐까 싶다. 당장 기억나는 행적을 떠올리면 작곡가 사티는 스스로 교단을 창시한 교주이기도 했다. ‘지도자 예수 예술의 수도교회’라는 명칭으로 교구 기관지까지 발행했는데 신도는 오직 자기 한 사람뿐이었다. ‘상아탑’이라고 이름 지은 파리 외곽지대 거처에서 홀로 극빈의 삶을 살았는데 생전에 아무도 그 방을 본 사람이 없었다. 거미줄과 박쥐 똥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는 그 방. 그는 음악이 예술이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져 ‘가구의 음악’을 추구했다. 가구 같은 생활용품으로 음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부족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몇 사람의 피아니스트가 교대로 며칠을 연주해야 할 분량의 멍청하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곡을 작곡했다(그 곡의 연주회가 진짜로 열린 적이 있는데 음악사의 사건으로 기록된다).

너무 이상한 별종이라 묻힐 뻔했지만 드뷔시가 그에게 열광했다. 드뷔시는 정말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보고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힘썼다. 드뷔시 말고도 그를 추종하는 음악가 집단이 많았으니 범상치 않은 인물은 틀림없다. 사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첫 단계는 그가 자기 곡에 붙인 제목들 때문이다. 가령 피아노곡으로 ‘야무진 데가 없는 전주곡’ ‘정말로 야무진 데가 없는 개를 위한 전주곡’ ‘말라빠진 태아’ ‘끝에서 두 번째의 사상’ ‘불쾌한 개요’ 하는 식이다. 차라리 시를 썼다고나 할까.

나를 포함해 주위에서 여럿 봤다. 책을 읽고 갑자기 사티 열광자가 되는 것이다. 열광만 품고 있으면 좋으련만 직접 음반을 찾아 듣는다. 그리고 곧장 빠져드는 혼란. 이게 뭐지? 대체 이게 어쨌다는 거야? 분명히 천재라는데, 신비의 화신이라는데, 이 이해할 길 없는 단순함과 소박함이라니! 내가 여러 문헌을 뒤진 끝에 찾아낸 프랑스 비평가의 그럴듯한 사티 평은 이랬다. ‘사티는 자신의 실패를 조직화했다’. 이 오묘한 말에 주석을 달지는 않겠다. 아니 못 단다. 대신 사티의 음악을 설명하는 다른 친절한 설명에는 귀 기울일 만하다. 엉뚱한 단순성, 미니멀리즘, 의고주의….

피아니스트 김석란의 에리크 사티 피아노작품집.

생전에 사티를 추종하고 인정한 예술가들의 면면으로 보아 그가 영감을 안겨 주는 매우 특별한 인물인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런데 그가 남긴 음악은 평이하기 그지없다. 일부러 그랬던 것이 아닐까.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화려하고 난해한 음악을 만들 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음악에 대한 조롱을 작곡한 게 아닌가 싶은. 낡은 유럽의 요란한 파사드에 대한 경멸을 그렇게 단조로운 선율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거창한 합스부르크 왕궁 바로 앞에 극단적으로 장식을 배제한 로스하우스를 건축한 아돌프 로스와 일맥상통하는 현대성을 구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사티는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안 이상스럽다. 그러니까 안 이상스러운 작품이 당대에는 오히려 이상스러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너무나 안 이상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는 규범적 인간형이 혹시 진짜로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상투적인 연속극에 등장하는 전형적 아버지상, 전형적 청소년상 따위가 실은 가장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루하루 너무도 안 이상하게 멀쩡히 살고 있는 중년의 내가 어쩌면 어릴 적의 꿈을 달성한 이상한 인간인 건 아닐까. 헷갈리네. 이상함과 안 이상함. 근데 나이 좀 먹었다고 이상과 안 이상에 관심이 없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지금 오디오에서 사티의 곡 ‘장미십자교단의 3개의 종소리’가 들리는데 어쩐지 좀 이상하게 들리는 듯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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