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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북스의 원대한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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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명승은
티엔엠미디어 대표

연초부터 애플이 뉴스의 중심이다. 스티브 잡스의 공백과 상관없이 지난해 4분기에 엄청난 매출 실적과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고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매출 463억 달러(52조원)에 영업이익 173억 달러(19조원). 매출 대비 이익률 37%에 이른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5700만 대 이상을 팔아 삼성전자를 압도하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애플은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지난 19일 새해 들어 첫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다. 미국 뉴욕시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아이패드용 디지털교과서인 ‘아이북스2’와 교사가 직접 수업용 교재를 만들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아이북 오서’를 공개했다. 대학생을 위한 강좌와 수업관리 서비스인 ‘아이튠즈 U서비스’도 소개했다.

 애플은 음악 서비스인 ‘아이튠즈’를 발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해당 산업군의 가장 유력한 기업들과 협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 교과서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피어슨·맥그로힐·호턴 미플린 하코트 등과 제휴해 모든 교과서를 15.99달러(1만7000원) 이하의 가격으로 판매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잡스는 생전에 “교과서를 바꾸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었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일까.

 먼저 가격이다. 우리 기준에선 교과서 한 권에 1만7000원이라면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자유발행제를 택한 미국에선 교과서가 권당 평균 80달러(9만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할인가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동영상과 3차원(3D) 그래픽,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교과서라면 학부모·교사는 물론 학생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또 이번에 무료 배포한 ‘아이북 오서’는 누구나 파워포인트를 다루듯 손쉽게 디지털교과서를 만들고 배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아이튠즈 U 서비스를 통하면 언제 어디서든 대학 강의를 듣고, 아울러 자신만의 강좌를 개설할 수 있다. 바야흐로 스스로 학습하는 ‘셀프 러닝(Self Learning)’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교과서 시장 규모는 한 해 9조원이 넘는다. 전체 매출 중 디지털교과서 비중은 지난해 3%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6%로 늘고, 오는 2020년에는 50%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금이야말로 애플이 디지털교과서 시장에 진출할 적기인 셈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주목받고 있는 ‘홈 스쿨링(Home Schooling)’을 대중화시키겠다는 의도도 보인다. 홈 스쿨링은 ‘의무 교육과 달리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마련한 자체 교육 과정에 따라 학습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사교육’이다.

 더 원대한 계획도 숨어있는 듯하다. 아이북스2를 통해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디지털 기기로 책 읽는 습관을 들이게 해 미래 출판 시장을 전자책 중심으로 바꿔버리겠다는 복안이다. 애플은 단지 미국 교육시장에 새 상품 하나를 내놓은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더하여 시스템까지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문제는 시장이 ‘애플의 생각대로 움직여줄 것이냐’다. 50만원대인 아이패드 안에서만 작동하는 디지털교과서가 과연 보편성을 강조하는 교육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지부터 미지수다. 우리나라에서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우리나라는 자유발행제가 아닌 검정 교과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디지털교과서 사업은 민간의 전자책 표준화 작업과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애플의 시장 장악력은 제한적이다. 애플 전용 소프트웨어와 콘텐트 체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미국의 교육·정보기술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애플발 디지털교과서 태풍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풍에 불과한 데는 이런 까닭이 숨어 있다.

명승은 티엔엠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