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월드 SEOUL10 행사 관람기 (2000.9.9~10)

중앙일보

입력

-행사 스케치-

어느덧 코믹월드가 10회 째를 맞이했다..여전히 여의도 중소기업 종합전시장 제 2관을 대관해 치러진 이번 행사. 2관. 역시 좁았다.

날짜가 추석연휴의 시작점과 맞물리는 바람에 이전에 비해 상당히 한산한 분위기마저 감돌 정도였다. 거기에 전날은 방학이 아닌 토요일이었던 탓에 학생들이 많은 관람객과 동인들 모두 준비가 덜 된 사태가 벌어져 빈 부스가 속출하고 하교시간이 넘어서야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내 만화 동인들과 관람자들의 연령층이 아직은 중고교생 층에 편중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번 행사의 입장권. 여전히 입장료는 3천원이었지만 형태가 약간 달려졌다. 매번 지적 받던 쪽지형 사각 스티커에서 팔찌형 스티커로 바뀐 것이다. 옷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손목에 '두르는'.. 하지만 본질은 여전한 '스티커'였다.

코믹월드는 패러디와 팬시 중심, 아카는 창작 중심. 이젠 '정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말이 되어가고 있는데 애석하지만, 이번 행사 또한 여지없었다. 참여 동인들 대부분이 패러디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는 바람에 Khai님과 ZIG님의 〈Pure Blood Vol.2〉, 유유님의 〈KOSMOS〉 등의 몇몇 회지를 제하곤 거의 창작회지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편 수많은 패러디들 중에서도 몇몇 인기 동인들의 패러디가 많은 눈길을 끌었는데 도발적 부스명과 부스명만큼이나 호화찬란한 멤버로 눈길을 끌은 [상디, 조로를 요리하다]를 비롯, 마계도시 관광협회의 [Limit Breakers]와 봉신연의 패러디로 악명 높은 [암모나이트 버전]등은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지난 19회 ACA때 소식지로 첫 선을 보였던 [님프클럽]은 회지로는 처녀출전이지만 이미 미소녀 그림으로는 [펜팬] 못지 않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멤버들의 명성과 대형 나체미소녀(?) 태피스트리를 통해 많은 이들을 끌어 모았다. 국내 동인계에서의 표현 수위는 어느정도까지일까를 생각케 만드는 그림을 선보였다.

코스프레의 경우 그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면 오버센스일지는 모르겠지만, 추석 연휴가 낀 탓인지 이전 행사의 그것보다는 참여인원의 수적인 면과 분위기 등에서 떨어지는 듯 했다. 물론 코스튬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날씨가 다소 쌀쌀해져서일까 노출도가 높은 의상이 줄어든 대신 트라이건의 밧슈 등 더운 여름을 뚫고 달려온 겹겹이 껴입다시피 한 복잡다단한 의상들이 자주 눈에 띄기도 했다.

-지적사항-

코믹월드 측에서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주변의 화장실들은 급속히 초토화되었다. 급기야 여의도 역에서 항의가 오기도 했다는데, 멀리 볼 것도 없이 전시장 밖의 두 군데 화장실은 안내문(을 가장한 경고문)을 가볍게 무시한 몰상식한들 덕택에 완전히 망가져가고 말았다. 분장에 필요한 각종 물품은 결국 쓰레기가 되어 자리를 차지했고 그 바람에 일반인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몇몇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떳떳하기까지 해서 불쾌감까지 안기기도 했다. 입에 바른 소리이지만, 코스튬 플레이어들의 지위상승을 외치기 이전에 이러한 질서에 관련된 모습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코믹월드의 특징(?) 중 하나인 입장권 대신의 스티커. 이번엔 팔찌형으로 일단 바뀌긴 했지만 손목 피부에 스티커를 둘러야 하는 건 뗄 때 매우 불쾌감을 유발할 뿐더러 역시 스티커이기 때문에 파손되기가 쉽다는 단점이 있다.

뜯어지면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입장 시에 대물림 내지는 암표(?)를 적발하기 위해 일일이 멈춰 세우기까지 하여 불편함까지 야기하기도 했다. 이미 여러차례 스티커의 불편함을 많은 이들이 호소하고 있으나 바뀐 모습마저도 스티커라는 점은 다소 실망이다. ACA의 버튼 스타일을 따라하라고는 하지 않겠다. 하지만 적어도 10회나 되었으면 불편, 불쾌 두 단어는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언젠가도 말했던 '입장료 3천원이 아깝지 않은 행사'의 시작은 이러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리라 본다.

'작품활동'의 두 축인 창작과 패러디, 그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느냐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매우 어리석고 시간 낭비적인 일. 그러나 아마추어 활동도 결국 그림을 그리는 것. 나름대로 더 잘 그리기 위한 공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아울러서 자신의 그림을 찾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은 결국 그림을 향한 자기공부요, 이를 위해선 많은 작품을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패러디 해보는 것도 좋으나 자신의 캐릭터와 설정을 잡아나가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패러디만을 전문으로 하겠다, 프로에는 관심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아마추어는 단순히 취미만도, 프로를 위한 전초만도 아니다. 아마추어 또한 하나의 만화계요 보아주는 독자들이 있다 - 그것만으로도 이미 창작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성립된다고 본다.

언젠가 몇몇 동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란 적이 있다. 말인즉슨 "ACA는 그 분위기가 너무 짜여져있는 것 같고 오리지널(창작) 안내면 안되는 것만 같아서 무서운데 코믹월드는 터치하지 않아서 편하다. 그냥 패러디나.." 등등이었는데, 사실 코믹월드가 자유방임주의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동인들 스스로의 분위기가 행사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은 잊고 있는 경향이 크다.
터치하지 않아서 그리 흐르는 게 아니라 터치하지 않는다고 아예 쉬운 것을 택하려는 태도가 만연해져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패러디'의 노력마저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상당히 제작이 쉬운(동인지 제작에 비해) 팬시만을 내놓는 동인들이 '매우'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증명된다.

행사 자체가 방향을 끌어주어야 한다는 견해(CAN의 박은실씨)도 옳고, 자유롭게 놔두고 하는 대로 이끌어지는 대로 간다는 견해(S.E.Techno의 조미라씨)도 옳다. 그러나 결국 행사가 이끌든 말든, 제일 중요한 무게중심은 '작품활동'을 한다는 동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 동인들 스스로가 그것을 자각하고 좀 더 분발해주었으면 한다.

코믹월드가 현재의 모습으로 나가고 있는 것은 그 특유의 자유방임 때문이겠지만, 그렇기에 동인들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정작 분위기 때문에..라는 볼멘소리보다 행동 하나가 아쉽다. 부디 코믹월드에서 자신만의 느낌이 철철 묻어 나오는 멋진 작품들을 어렵지 않게 구해볼 수 있길 바래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느새 이 나라 만화문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알림-

코믹월드 SEOUL11과 코믹월드 BUSAN1 부터, 인터넷으로도 행사참가 신청이 가능해졌다. S.E.Techno와 코믹월드 공식 홈페이지 http://www.comicw.co.kr로 가면 신청폼이 준비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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