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아픈 아내 대신 오토바이 몰다 렉서스 긁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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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시각장애인 김모(50)씨는 부인과 함께 서울 중랑구의 주택가 지하방에 세 들어 살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김씨는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과 우유 배달을 하는 부인의 수입으로 생활해 왔다.

그러던 중 최근 아내가 병원에서 탈장 치료를 받느라 한동안 일을 중단하게 됐다. 생계가 막막해지자 김씨는 부인의 50㏄ 오토바이 핸들을 잡았다. 동네 상인들의 물건을 배달해 주면 심부름 값으로 1000~2000원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고 운전 면허도 없었지만 앞이 뿌옇게나마 보이는 상태다. 눈을 크게 뜨고 오토바이를 최대한 천천히 몰았다.

 김씨는 지난 14일 중랑구 도깨비시장에서 오토바이를 몰다 일제 수입차 렉서스의 뒷문을 긁는 접촉 사고를 냈다. 렉서스 운전자 고모(40)씨는 김씨 잘못이라며 합의금으로 50만원을 요구했다. 김씨도 “가까이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보지 않은 고씨에게 잘못이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고씨 신고로 김씨는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서울중랑경찰서는 김씨를 무면허 운전을 한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25일 밝혔다. 경찰 조사 후 렉서스 운전자 고씨는 본인 부담으로 하겠다며 물러섰지만 김씨는 약식 재판 결과 벌금 20만원가량을 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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