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쪽, 영원히 울리는 종을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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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com 오현아 기자

밀란 쿤데라는 소설〈정체성〉에서 개개인의 정체성이 인간의 욕망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은밀한 욕망을 채워가는 것이야말로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라고. 그렇다면 열달 동안 한 여인의 뱃속에 머무르다 태어난 쌍둥이는 독립된 개체일까, 아니면 하나의 정체성을 나누어 가진 존재일까.

하성란 님의 장편소설〈삿뽀로 여인숙〉(이룸 펴냄)은 쌍둥이 남동생 '선명'이 교통사고로 즉사한 뒤 한꺼번에 뒤엉켜버린 '진명'의 삶을 뒤쫓아간다. 그녀 특유의 치밀하고 건조한 묘사법은 여전하다. 그녀가 그렇게 드러내는 진명의 20대 삶이 눈부신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모래를 통과해 짐칸 사이로 새어나오는 정수된 물이 선명이의 상처를 닦아내고 있었다. 다행히 선명이는 즉사했다. 살아 있었다면 트럭의 앞바퀴가 밟고 지나간 왼쪽 이마의 함몰된 커다란 상처가 두고두고 근심거리가 될 뻔했다."(이책 10쪽)

선명의 사고 뒤 아파트 베란다에 묶여 있는 자전거처럼 진명의 삶은 선명의 죽음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진명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선명의 흔적을 찾아, 아니 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뿐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여덟 정거장을 아침마다 뛰어다니고 일본어로 중얼거리는 환청을 떨쳐내기 위해 달린다. 진명이 선명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에 다름 아니다.

허파에 꾸역꾸역 밀려드는 공기를 토해내면서 계속 달리지만 진명은 자신을 선명으로 착각하는 어머니를 향해 돌아설 수도, 왼쪽 귀를 파고드는 '고스케'라는 말을 지울 수도 없다. 토악질하듯 숨차게 피를 뿜어대는 심장에게 '제발 터져라' 처절하게 외쳐댈 수밖에 없다.

박제된 동물처럼 욕망을 거세한 진명은 고등학교 졸업 후 사무 보조원으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목을 잔뜩 움츠리고 등껍질 속에 자신을 숨긴 늙은 거북이처럼.

진명을 '달리는 아이'라고 부르면서 호감을 갖는 김동휘, 첫만남부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일본인 현지처 김유미, 덕수궁 돌담길 밑에서 진명과 '엽맥처럼' 메마른 키스를 나눈 김정인. 진명에게 이 사람들은 모두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하다. 선명이 수학여행에서 산 4개의 종 중에서 3번째 종을 목에 걸고 다니는 윤미래만 빼고.

진명은 선명이 남겨 놓은 마지막 종을 찾아 일본 삿뽀로의 낯선 여인숙으로 찾아든다. 환청으로 들리던 '고스케'가 '오랫동안 메마른 강바닥', 삿뽀로로 진명을 부른 것이다. 고스케의 방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는 선명의 마지막 종. 진명은 선명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종소리를 듣는다.

성대 수술을 받아 짖을 수 없는 개 토마처럼, 윤미래의 목과 고스케의 방에 걸려 있는 울리지 않는 종처럼, 선명은 진명의 삶에 소리없이 울리는 존재이다. "이진명, 우린 쌍둥이다. 같이 태어났고 늘 같이 있을 거다"(이 책 245쪽)라는 말을 영원히 울려대는, 그래서 슬프면서도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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