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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3각 경기하는 전자책 시장 - 2

중앙일보

입력

e-북 콘텐츠 개발비 만만치 않다

관계자들이 e-북 콘텐츠의 편중 현상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도 쉽게 다른 콘텐츠로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개발비용 때문이다. 무협소설 등이 싼 가격에 팔릴 수 있고 3천원 정도의 판매가에도 마진을 남길 수 있는 이유는 무협소설 작가들이 컴퓨터 환경에 익숙하다는 것. 즉 e-북 출판으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전환비용이 낮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에서 말하는 e-북 개발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야기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 e-북 서비스 업체는 원고지 1천매 분량의 소설을 e-북으로 제작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대략 20만원 정도 소요된다고 밝혔다. 그것도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비용만이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에 디지털 편집비용과 프로그램 사용료, 서버구축, 카드 수수료 등 추가비용을 생각하면 현재 책정되는 3천원 정도의 정가는 수익과 거리가 멀다고 설명한다.

e-북 서비스 업체의 한 관계자는 “실제로 최근 인터넷을 통해 신작소설을 발표한 모 작가의 작품은 기존 종이책 판매량의 30%에 밑돌 만큼 독자들의 반응이 약하다”며 “현재로서는 e-북을 통해 이익을 기대하기 보다는 기업 이미지 차원에서 명망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혔다.

김 영사(http://www.gimmyoung.com/)의 박은주 사장은 “현재 e-북을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기존 종이책 출판에서 인쇄와 제본 비용만 제외될 뿐이지 종이책 출판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며 “현재처럼 e-북 정가가 무조건 싼 가격에 제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콘텐츠의 가치에 따라서 차별화되는 가격 책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연달아 인기 작가들의 신작소설을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는 예스 24의 유성식 팀장도 “e-북이 3천원 정도의 정가일 경우 보통 1천5백권(내려받기) 판매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 있는데 이에 못 미치는게 현실”이라며 “현재로서는 원가도 건지지 못하는게 e-북 시장이다. 일부 언론의 장밋빛 보도에 현혹된 업체들이 무분별하게 e-북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e-북 대결, 정통부 vs 문광부

또한 e-북을 둘러싼 정통부와 문광부의 부처 이기주의도 e-북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장벽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문광부의 지원을 받는 한국전자책컨소시엄이 창립총회(9월 7일)를 앞두고 정관을 검토하는 지난 8월, 정통부는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며 솔루션 및 단말기 업체를 시작(8월 10일)으로 e-북 서비스 업체(8월 17일)와 출판사(8월 22일) 등 관계자 간담회를 가졌다. 정통부는 9월중으로 e-북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부처가 e-북이라는 단일 시장을 놓고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통부와 문광부가 주도권을 놓고 겨루는 이유는 간단하다. 문광부는 엄연히 출판이 자기 부서 소관이기에 전자책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통부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e-북 서비스는 단순한 응용서비스가 아닌 Post-PC계열의 새로운 정보매체의 출현과 관련되는 차세대 인터넷서비스이자 지석정보사회 구현의 중요한 매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문광부는 출판물로서 e-북을 바라보고 있으며 정통부는 정보통신망이나 IT기술의 전체적인 발전방향에서 연계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e-북을 둘러싼 정부 부서간 갈등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e-북 시장에 대해 정부측 창구가 일원화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출판계도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출협은 정통부의 e-북 사업 전개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한국출판인회의는 두 부처간 경쟁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정종진 사무국장은 “정통부가 뒤늦게 e-북 시장에 참여하면서 별도의 e-북 포럼을 준비하고 활성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일”이라며 “출판이 디지털화하고 여기에 벤처 기업들이 참여한다는 차원에서 정통부가 관여하려 든다면 오히려 현재 추진되는 일들을 지원하는 쪽이 이치에 맞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통부의 사단법인 등록승인을 얻어낸 한국출판인회의의 관계자는 “출판인회의를 이루는 대부분의 회원사들이 출협 회원사들 이기 때문에 출판계가 양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단지 주관 부처의 지원사항에 따라 출판계의 그림이 달라지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문광부쪽의 추진사항이 생각보다 진척이 느리다.”며 “인터넷을 총괄하는 정통부는 아무래도 다를 것으로 본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출판인회의에 비해 출협 측이 이처럼 강하게 정통부에 볼멘소리를 내는 이유는 이미 디지털 콘텐츠 식별체계(DOI, Digital Object Identifier) 사업권을 놓고 한차례 신경전을 펼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DOI는 디지털 콘텐츠에 붙는 바코드이다. 책마다 고유하게 붙어있는 ISBN처럼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음성 파일 등에 특정한 코드 값을 붙여 관리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또한 DOI는 단순한 콘텐츠 목록이 아닌 e-북 관련 저작권 보호기술이나 전자상거래를 위한 하나의 인증시스템으로 활용될 수 있다.

출협은 올해 초부터 저작권 단체를 주축으로 하는 ‘한국DOI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국제 DOI 재단(IDF)에 가입하는 등 DOI 체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해 정통부가 최근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를 지원하면서 DOI 사업권을 놓고 출협을 위협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두개 단체가 노리는 목표는 국내 DOI 국가 에이전시(RA)의 사업권 확보.

출협의 한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에 결정되는 국내 에이전시 사업자 선정에 희망서를 제출한 국가중 한국이 유일하게 2개 단체로 나뉘어 등록했다”라며 “이는 정통부가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한다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문학 작가들이 최근 개정된 저작권법의 전송권 자유 조항을 들어 출판사와의 온라인 전송권 재계약과 인세 50%를 주장하고 있어 출판사와 갈등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e-북 시장을 둘러싼 업계의 갈등과 고민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하지만 업계 당사자들은 이러한 e-북 논란이 아직 시장 초기인 점을 고려한다면 당연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다양한 논리와 대결이 시장을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밝게 보고 있다. 다만 e-북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악순환으로 연결되지 않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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