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 이렇게 풀자 ④ 반도체 만드는 동운아나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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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동운아나텍 김동철 대표는 “남이 생산설비에 투자할 때 우리는 인재에 투자한다”고 말한다. 왼쪽부터 김 대표, 손미영·송지혜·김승철·김종민 사원. [변선구 기자]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동운아나텍의 김동철(54) 사장은 요즘 각 대학 공대 교수를 만나느라 바쁘다. 석·박사 과정의 인재를 미리 발굴해 졸업 후 이 회사에 입사시키기 위해서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지만 능력 있는 인재에게는 장학금도 준다. 이미 이 회사의 장학금을 받아 석·박사 과정을 마친 인력 두 명이 입사했다. 현재도 석사 과정 학생 한 명을 지원 중이다. 인재가 제 발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키워서 뽑겠다’는 전략이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동운아나텍은 2006년 반도체 유통기업인 동운인터내셔널에서 분사한 기업이다. 두 회사 모두 김 사장이 최대 주주다. 핵심 제품은 휴대전화용 카메라의 자동초점(AF) 기능 구동 반도체다. 국내 시장의 90%, 세계 시장의 3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약 1억5000만 개를 국내외 기업에 납품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미국 업체와 세계 1, 2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이다. 성장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첫해 28억원이던 매출은 5년 뒤인 지난해 253억원으로 아홉 배가 됐다. 20명이던 직원은 네 배인 80명으로 늘었다.

 김성남(30) 주임은 이 회사의 지원을 받아 단국대 석사과정(전자공학)을 마친 뒤 2010년 입사했다. 장학금을 받은 대가로 약속한 1년6개월의 의무 근무기간이 끝났지만 회사를 옮길 생각은 전혀 없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에 동운아나텍만 한 회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공부한 ‘아날로그 반도체’는 뛰어난 머리보다 많은 경험이 더 중요한 분야”라며 “비록 대기업보다 급여는 좀 적지만 회사 선배에게 배우는 것이 많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의 평균연령은 35세다. 전 직원의 81%인 65명이 20~30대 청년이다. 조직이 젊다 보니 의사결정도 빠르다. 회사 지원을 받아 광운대 박사과정(컴퓨터공학)을 수료한 이승권(36) 기술생산본부 시스템팀장이 직속 상사인 부서장에게 보고하면 곧바로 사장에게 내용이 전달된다. 팀장급만 돼도 상당한 결정권이 주어진다는 얘기다.

 동운아나텍의 입사 면접은 깐깐한 편이다. 사장이 직접 면접장에 들어가 가정 환경은 어땠는지, 학교 때 아르바이트는 뭘 했는지까지 시시콜콜 물어본다. 현재 무엇을 갖추고 있느냐보다는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훨씬 중요하게 따진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열정과 성취욕이다. 김 사장은 “대학 입학 성적이 시원치 않아도 열심히 노력하면 졸업 때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처럼 회사도 입사 때보다는 들어온 다음이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면접이 깐깐한 대신 일단 들어오면 믿고 맡긴다. 지난해 3월 입사한 손미영(24)씨는 영업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회사 매출의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 처리된다. 손씨는 “비록 신입사원이지만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대기업에 들어갔다면 이런 자부심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원 복지만큼은 확실히 챙겨준다는 것도 이 회사의 매력이다. 별도의 체력단련비·자기계발비를 지급하고, 대리급 이상은 매년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책을 사면 월 세 권까지 책값도 회사가 내준다. 영어·중국어 강사를 회사로 불러 외국어 교육도 한다. 최근엔 지방 출신 미혼 사원들을 위해 기숙사도 만들었다. 김 사장은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회사가 잘되면 그때 복지 혜택을 늘리겠다’는 말만 해선 인재를 잡아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직원을 믿고 일을 맡기는 데다 복지까지 신경 쓰니 자연히 취업 희망자가 몰려든다. 2010년 대졸 공채 때는 10명 모집에 1000명 이상이 지원했다. 4명을 뽑은 지난해도 300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렸다. 2010년 입사한 김승철(27)씨는 합격한 회사 10여 곳 중 동운아나텍을 선택했다. 그는 “회사의 빠른 성장세와 다른 회사에선 찾아보기 힘든 가족적인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동운아나텍은 공장이 없다. 개발한 제품을 국내 기업과 독일·싱가포르 등지의 회사에서 외주 생산한다. 김 사장은 “인재가 우리 회사의 ‘공장’”이라며 “남이 생산설비에 투자할 때 우리는 인재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정년이다. 김 사장은 “회사를 더 키워 좀 더 많은 사람이 보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가 본 동운아나텍] 번듯한 공장 하나 없이 인재 키워 강소기업으로

김민엽
기술보증기금 자산유동화팀 과장(기술평가사)

대한민국은 이미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다. 이런 성과는 대기업 혼자 낸 것이 아니다. 동운아나텍 같은 ‘강소기업’의 선도적 기술력도 큰 역할을 했다. 동운아나텍은 자체 제조라인 없이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설계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는 기업이다. 휴대전화용 카메라의 자동초점 기능을 구현하는 반도체칩(AF Driver IC)을 개발해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성장성이 더 커졌다. 조명용 LED 전력 반도체칩의 개발도 마쳤다.

 번듯한 공장 하나 갖추지 않고도 잘나가는 회사가 된 것은 연구개발·품질관리·영업 등에서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했기 때문이다. 기술보증기금이 동운아나텍에 보증 지원은 물론 10억원의 직접투자를 한 것도 이 회사 개발인력의 우수성과 제품의 기술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조차 단숨에 넘어버린 이 회사의 젊은 인재에게 과거 히트 제품을 무색하게 할 새 히트 제품을 기대해본다.

김민엽 기술보증기금 자산유동화팀 과장(기술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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