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손 벌리는 유럽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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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자금난에 빠진 유럽 시중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도 손을 벌리고 있다. 금융과 산업 자본의 성격이 뒤바뀐 셈이다.

 미국 경제전문채널인 CNBC는 “재정위기 탓에 부실화된 유럽 시중은행이 자금 조달에 애를 먹자 현금이 많은 기업에 손을 벌리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돈거래 기법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다. 유럽 시중은행은 ‘일정 기간 뒤에 정해진 가격에 반드시 되사겠다’는 조건을 달아 우량 채권 등을 일반 기업에 팔고 급전을 빌리고 있다. 지금까지 RP거래는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이 급전을 주고받을 때 많이 활용됐다. 현금이 많은 기업이 중앙은행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CNBC는 RP거래 관계자의 말을 빌려 “최근 벌어진 RP 매매의 25%가 유럽 시중은행이 일반 기업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거래”라고 전했다.

 유럽 시중은행에 돈을 빌려주고 있는 기업은 미국 제약회사인 존슨&존슨·화이자,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인 푸조 등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미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2011년 말 현재 미국 기업은 2조3000억 달러(약 2650조원)를, 유럽 기업은 9200억 달러(약 1058조원)를 쥐고 있다.

 기업별로는 미국 GE가 822억 달러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존슨&존슨의 보유액은 224억 달러며 영국 석유회사인 BP와 독일 자동차그룹인 폴크스바겐의 보유액도 각각 200억 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은행과 기업의 성격이 뒤바뀐 것은 현금 부자 기업이 유럽 재정위기 파장이 두려워 새 사업에 투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어디엔가 빌려줘 이자라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은행 예금은 안전하기는 하지만 금리가 낮아 현금 부자 기업 경영자의 성에 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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