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바다의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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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윌슨은 현대연극의 살아 있는 신화다. 그가 지난 30년간 창조해온 느리고 신비한 이미지는 모든 연극 관계자들의 열광적 숭배를 받아왔다.

또 그의 연극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상업적 실험극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가 전세계를 돌며 쉴새없이 만드는 연극은 난해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고급 취향의 관객들을 불러모은다.

우리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몇 초 사이에 우리를 공격한 후 무의식으로 스며드는 광고 이미지들이 그 주범일 것이다. 그러나 윌슨 연극의 이미지는 다르다.

그것은 정면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그것을 느리게 붙들고 견디게 하며, 눈을 뜬 채 그 속에 빠져 그것을 응시하며 각자 꿈꾸도록 만든다.

초기의 대사없는 거대한 이미지 작업과 그 후의 언어해체적 실험 등을 거쳐 근래의 로버트 윌슨은 고전 명작과의 만남을 꾀하고 있다.

입센의 원작 희곡 〈바다의 여인〉은 중산층 가정의 도덕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재창작을 맡은 수전 손탁은 입센의 원작을, 인간의 원형적 욕구라는 신화적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윌슨식 연출의 길을 터줬다.

바다의 거친 야성 속에서 자란 엘리다는 바다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을 등지게 되는데…. 연출은 신화적 몽상으로 관객을 이끌어가는 한편 쉴새없는 이탈과 분열의 장치로 의미를 열어놓는다.

윌슨의 무대의 기술적 완성도는 과연 전율을 느끼게 한다.

꿈결같은 조명은 캔버스 위의 물감 이상으로 자유롭게 무대 위에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며, 몇개의 면과 선으로만 처리된 미니멀한 무대장치와 소품들은 그것 너머의 초월적 명상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극장 전체를 감싸는 입체 음향은 관객의 등줄기와 무의식에 소곤댄다.

문제는 콘텐츠다. 우리 연기자들이 과연 연출의 감각과 주문에 몸과 마음과 머리로 동참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윤석화(엘리다 역)의 단련된 무대 존재감과 타이밍 감각은 공연의 리듬을 이끌어간다.

그러나 다른 대다수 배우들은 파격적인 변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몸을 물체화하고 해체하고 비틀어 과장되고 명료하게 그래픽화하라는 연출의 까다로운 지시를 충분히 육화해 내지 못했다.

외국인이 연출한 탓인지 대사의 소화와 전달도 취약지대로 남았다. 그 결과 공연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줄 수 있는 감동을 적지아니 놓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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