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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기업, 북한 리스크 대응팀 만들 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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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호 24면

#1.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12월 19일. 북한 당국의 발표 4시간 뒤 중국은 외교부 명의로 관련 논평을 내놓았다. 당·정·군을 망라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전(弔電)을 발송한 데 이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시진핑 부주석이 몸소 조문에 나섰다. 마치 각본을 짜놓은 듯 일련의 절차를 착착 밟아나갔다. 중국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맞아 보여준 여러 조치는 신속하고 주도면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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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그룹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에 400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2006년. 당시 집중 포격의 대상지인 이스라엘 하이파에 근무하는 인텔(Intel) 직원은 2400여 명에 달했다. 34일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14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이 미국 반도체회사의 임직원은 피난처와 집 등 대체업무 장소 원격지 근무를 통해 업무공백을 최소화했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때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북미 강습 때도 인텔은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했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비즈니스 경쟁 환경에서 기업이 신경 써야 할 대상은 시장과 소비자뿐만이 아니다. 정치·군사적 환경변화 등 각종 지정학적 요인이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빠뜨려선 안 될 큰 변수다. 실제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크·이란처럼 분쟁이 일상화된 중동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와 중남미·아프리카 등 세계 도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력충돌과 살상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전쟁 후 현재까지 휴전 상태인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에 이어 최근 김정일 사망에 이르기까지 북한 리스크는 기업 경영활동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동북아 안보 상황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북한 리스크가 가세하면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김정일 사망 후 중국 정부가 보여준 신속하고 시의적절한 대응을 참고할 만하다. 물론 북한 리스크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대응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부가 다 알아서 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정부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업종과 처한 상황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드러난 북한 리스크는 크게 북한 정권에 내재한 요인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김정일 사망과 김정은 체제 출범을 계기로 북한 리스크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김정은 체제하에서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다. 이는 북한정권 자체의 고유 리스크 요인이다. 우리를 포함해 동북아 관련 국가가 주시하는 요인이다. 평상시 기업활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주변정세와 국제질서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언제든지 돌출돼 나올 수 있는 위험인자다. 둘째는 북한정권이 유발하는 특정 행위 또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영향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 모두 위기관리의 주 대상으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직접적이며 복합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기업경영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대표적 사례다. 도발의 결과 직접적으로 군인과 민간인 사망, 건물 파괴로 인한 재산피해가 있었으며 간접적으로는 경제의 불안정성 심화, 국민의 불안 고조 등 복합적인 피해가 빚어졌다. 북한의 핵실험 역시 기업활동과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영향을 초래했다.
북한 리스크는 또한 강도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위험’의 수준이다. 정권의 불안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나 잠재적인 성격이 강해 지금 당장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개성공단 진출 기업 등 북한과 관련해 사업을 벌이는 일부 기업으로 영향력이 국한된다. 다음으로 ‘위협’ 수준이다. 북한이 대남 강경책을 선언하거나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행동에 나서는 경우다. 외국 자본의 국내 투자와 자본 유·출입, 국민 심리, 국가 신인도 등에 폭넓게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기업활동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고 피해도 간접적이거나 부분적이다. 마지막으로 ‘위기’ 단계다. 북한이 국지적이나마 대남 도발을 감행해 군사적 충돌이 빚어지거나 북한 내부가 소요사태 등 통제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다. 사이버 테러 등 비군사 도발도 이에 해당한다. 피해가 발생하고 파급효과가 광범위하게 전파되며 국가와 기업·개인 모두가 직접 영향권 안에 놓이는 최악의 상황이다.
일부 국내 글로벌 기업들에서 북한 리스크 대응 움직임이 포착된다. 아직까지는 주요 대기업 그룹을 중심으로 산하 경제연구소를 통해 관련 정보를 취합해 내부적으로 회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전담인력을 두고 국내외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받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기업도 있다. 글로벌 기업인 A사는 최근 자체적으로 북한 리스크 전문분석팀을 구성했다. 북한 당국의 주요 움직임과 관련 동향에 대한 일일 모니터링과 분석평가 작업을 하고 있다. 대북사업에 관심이 많은 B사는 외부 전문가로 자문팀을 구성해 유형별 가상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앞으로 많은 기업이 이러한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돼 몇 가지 요령을 제시해 본다.
먼저, 기업 활동 중 북한 리스크와 관련돼 있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식별해내고 이를 목록화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북한 리스크 관련 요인을 점검해 때때로 주의를 환기시킬 ‘눈과 나팔수’, 즉 대응 전문조직이 필요하다.
둘째, 북한 리스크 중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기업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이에 기반한 비상경영 시나리오를 수립해야 한다. 북한 리스크 요인이 현실화할 경우 이러한 결과가 예상되며, 이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한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는 상세할수록 좋고, ‘무슨 상황, 어떤 피해와 파급영향, 누가 무엇을, 어떻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셋째, 비상경영 시나리오에 입각해 각 단계별·요소별로 상세한 대응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북한 리스크는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소멸될 수도 있지만,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단기와 중장기 계획이 모두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례적으로 비상경영계획을 훈련해 숙달돼 있어야 한다. 이 훈련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최고경영진이 직접 참여하는 실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주주·고객 등 주요 이해관계자와의 원활한 소통 훈련도 필요하다. 도상훈련이든 실제훈련이든 거의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훈련이 한두 번쯤 필요하다. 이는 소비자를 상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안철현
국가정보원 정보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 국장을 역임했다. 딜로이트 자문위원이다. 경희대 언론학 박사로, 정부·기업의 위기관리체계 구축과 운영에 관한 연구·자문·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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