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비즈니스, 한국적 비즈니스 문화에서 탈피해야

중앙일보

입력

이인규 사장 약력보기

평소 기업철학은?

가치창조와 파트너쉽을 항상 강조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벤처들의 성장과정에서 항상 같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겪은 일화나 秘話

와이드텔레콤이라고, 무선 호출기와 CDMA 전화기를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 사장은 삼성전자 무선 호출기 분야 엔지니어로 근무하다 독립한 사람으로, 무선 호출기 하나 달랑 개발해서 들고 투자를 요청해 왔습니다. 회사 직원도 기술자 2~3명밖에 없고 생산 라인도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미 텔슨전자나 팬텍 등의 회사가 무선 호출기로 돈을 벌어 휴대폰 사업으로 전환하던 때고 무선 호출기는 쇠퇴하고 있던 때라 주변에선 가망 없으니 투자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5억원을 투자했는데 이 때가 1997년 3월 말이었습니다.

제가 왜 투자를 결정했느냐 하면 사장 말이 「디자인과 마케팅은 자신 있다. 무선 호출기의 경우 과거엔 통신사업 서비스업체에 대량 납품을 통해 성장했는데 우리는 수출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할 자신이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무선 호출기 시장은 한국이 상당히 빨랐던 분야로 당시 아시아 시장이 서서히 달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와이드텔레콤은 그해 여름 곧바로 싱가포르의 신텍이란 회사의 주문을 받고 물건을 선적했고, 곧이어 홍콩 대만 태국 등지에도 수출 물량을 확보해 첫해 매출 1백43억원을 올렸습니다. 현재 이 회사는 미국 등지에도 무선 호출기를 수출하고 있고 휴대전화로 사업 영역을 넓혔습니다. 코스닥에서도 대표적인 정보통신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구요.

기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96년 1월14일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메디슨의 1세대 벤처기업인들에게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침 조찬모임이었는데요. ‘벤처 성장과 자본시장’이라는 주제로 2시간 정도 특강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벤처기업을 자본시장과 관련지어 나온 자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벤처기업이 활성화되려면 우선 벤처캐피털이 활발한 활동을 해야 되고 양쪽이 잘 발전하려면 벤처증권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벤처기업들도 미약하지만 씨앗은 틔웠으니 이제 관심을 가질 부분이 벤처투자사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강의 이후 강의를 들었던 1세대 벤처기업인들이 저의 취지를 공감해서 함께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인터넷의 미래를 간단히 말하면?

인터넷은 이제 하나의 기술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인터넷 하나만 가지고 미래를 논하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Technology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른 분야와의 긴밀한 연계가 시급합니다. 본격적으로 엔터테인먼트와 바이오 등과의 결합을 통한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전개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벤처 기업들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벤처가 확실하게 성공한 나라는 사실 미국밖에 없습니다. 다른 나라는 흉내를 내봐도 잘 안됩니다.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벤처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대만이 어느 정도 성공한 케이스에 속합니다.
요즘은 인도가 두 나라와 비슷한 양상으로 뒤쫓아 가고 있구요. 이들 나라에서 벤처가 성공하는 것은, 우선 이스라엘이나 대만 둘 다 중소기업과 수출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이고 미국에 유태인과 화교라는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도는 인터넷과 소프트 웨어 산업에 강하기 때문이구요.

벤처가 철저히 미국적인 비즈니스란 것은, 무엇보다도 미국적인 문화에 딱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와 창업자를 존중하는 분위기에다 기업의 창업자금은 철저히 외부 조달에 의존하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또 재벌이 없고, 정부는 일관되게 경쟁 제한 요소를 없애고 시장 경쟁을 통한 발전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벤처비즈니스 역시 재벌의 관행에 익숙해진 한국적 비즈니스 문화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기업의 성장기게 접어듬에 따라 이러한 과거 한국의 잘못한 비즈니스 문화에 일찍 노출이 되어버린 벤처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한국벤처산업의 향후 방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현재는 주춤한 상태이지만 벤처의 급격한 붐을 가져온 것은 코스닥 시장의 폭발적 성장때문이었습니다. 비록 버블현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재벌들이 장악한 한국의 구경제에 새로운 활력과 충격을 불러 일으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주요 기술산업의 성장은 경제호황의 원동력이 돼왔습니다. 기술산업의 성장에 있어 벤처기업들은 밑거름의 역할을 합니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땀을 쏟고 있습니다.

벤처에게 위기란 기회와 같습니다. 한국의 벤처기업인들은 최근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으로 확신합니다.

개인적인 강점

오기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기질적으로 한번 마음먹으면 끝을 봐야 하는 기질이 있습니다. 그것이 의외로 맞아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좋아하거나 자신있는 스포츠나 특기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지만 가끔 2명의 아들과 등산을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 자기계발을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부분

무엇보다도 글로벌한 사고와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외국잡지나 신문을 틈틈히 정독하고 외국에 있는 지인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트랜드를 한발 앞서 읽어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해보고 싶으십니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또한 많은 분들께 권합니다. 항상 승부하고 정정당당하게 책임을 지라고. 너무나 명백합니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가 우리나라에서 드디어 꽃을 피우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격식이나 절차보다 본질을 중요시하는 분야이니 가장 생산적인 분야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