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TV, 이젠 전세계로 쏜다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필리핀을 다녀온 아리랑TV의 공채 1기 MC 태인영씨는 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몇몇 필리핀 사람이 다가와 아는 척을 하는 게 아닌가. 그가 진행하고 있는 한국문화 정보프로 〈컬처 애버뉴(Culture Avenue)〉 를 본 사람들이었다.

태씨는 "필리핀에서도 우리 방송을 많이 본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저까지 알아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라며 즐거워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리랑TV 직원들은 종종 비슷한 경험을 한다. 지난 4월말 인도의 뭄바이(구 봄베이)를 방문했던 황규환 사장은 전혀 뜻밖의 장면과 마주쳤다.

현지의 한 케이블 SO(지역방송국)가 한국의 국책방송인 아리랑TV를 엔터테인먼트 채널로 방영하고 있었다. 오락과 교양프로를 반반 정도로 섞은 편성전략이 인도인에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반면 비슷한 성격의 독일 DW와 프랑스 TV5는 해외채널로 분류하고 있었다.

위성방송으로 한국을 알리는 아리랑TV가 지구촌 전체를 커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방송으로 발돋움한다. 다음달 26일부터 전세계를 대상으로 전파를 쏘게 된 것. 지난해 8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첫 방송을 내보낸 이후 1년 만에 전세계를 권역으로 하는 방송사로 급성장했다.

아리랑TV의 세계방송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크다. 우선 우리 방송이 선진국 대열에 본격 합류한다는 뜻이 있다. 사실 외국에선 우리보다 훨씬 빨리 국가홍보 채널의 세계화에 착수했다.

문화를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꾀하는 통로로 해외방송을 앞다퉈 실시한 것. 예컨대 프랑스 1984년, 독일 92년, 이탈리아 95년, 일본 98년 등이다.

특히 방송이 국가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가홍보 채널이라고 해서 국가시책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경제.사회를 전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문화첨병이요 경제대사인 것이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아리랑TV는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한국방송이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지름길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큰 덕을 본 곳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다. 좋은 상품이 있어도 외국에 홍보할 여력이 없는 기업체들이 많은 신세를 졌다. 각종 경제관련 프로를 통해 수출이 크게 늘어난 업체가 한 두 곳이 아니다.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지난해 아리랑TV의 홍보로 매출이 일곱 배 이상 늘어났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적 영향력도 상당하다. 탤런트 장동건은 드라마 〈의가형제〉로 베트남에서 스타로 부상했고, 축구선수 안정환은 K리그 중계를 통해 중동지역에서 인기가 급등했다. 베트남 여성들의 한국연수기를 소개한 프로가 방영되자 현지 일간지가 한국을 '따뜻한 나라' 로 비중있게 다루는 등 국가 이미지 개선에 일조했다.

아리랑TV는 이같은 여세를 몰아 한국영화 편성을 늘리고, 최근 의욕적으로 신설한 게임프로를 활성화해 우리 영화.게임의 수출에도 힘을 실을 계획이다. 현재 아리랑TV의 시청규모는 아.태지역의 20개국 1천5백만 가구. 대부분 케이블 지역방송사들이 위성방송 전파를 잡아 각 가정으로 전송하고 있다.

시청자도 해외교포보다 외국인이 훨씬 많다. 지난 6월 해외방송 시청자를 대상으로 개최한 사은행사에 참가한 사람 가운데 외국인과 교민의 비율이 65% 대 35%로 나타났다.

9월 26일에는 방송지역이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대륙으로 확대된다. 모두 4개의 위성체가 동원된다(그래픽 참조). 유럽.아프리카에선 이스라엘의 중계소를, 아메리카에선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중계소를 이용한다.

아리랑TV 기획조정팀 김현식 국장은 "국제적인 전파전쟁 시대에 한국의 문화와 경제를 보급하는 '제2의 광개토시대' 를 열겠다" 며 "콘텐츠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는 다른 방송사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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