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Weekly] ‘닷컴 버블論’은 음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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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대표할 인터넷 비즈니스는 지금 버블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닷컴 버블론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많은 닷컴 기업이 망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비즈니스가 몰락하는 것은 아니다.

▶ 버블 속에 잉태된 발전의 씨앗

나는 현실이 복잡하여 판단이 어려울 때마다 역사를 되돌아 본다. 우리는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씨앗만 보고도 1년도 못 살 작은 잡초와 수백 년을 자라 하늘을 찌르는 거목으로 성장할 나무를 구분해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그 속에는 미래를 예지하는 힘이 담겨 있다. 최근 휘몰아치는 닷컴에 대한 논란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역사를 생각한다.

19세기 스티븐슨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산업혁명은 절정을 맞았다. 말이나 사람의 힘을 대체한 증기기관의 놀라운 위력을 목격한 19세기 영국인들에게 그것은 새로운 문명의 상징이자 일확천금의 열쇠였다. 사람들은 주머니를 털고 빚을 내서 증기기관을 사들였다.

당연히 그 중에서 극히 일부의 사람만 사업화에 성공했을 뿐 대부분의 사람은 망했다. 이처럼 혁명적인 변화는 늘 열광과 버블을 동반한다. 또 그에 따른 반동과 부작용 역시 피할 수 없는 역사 발전 과정의 부산물이다.

19세기 영국인들의 사재기를 비난하는 견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버블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준비되고 꽃을 피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증기기관을 사서 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증기기관의 원리를 이해하는 안목을 갖추고 새로운 기계를 운전할 기술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산업혁명 과정에 현대적 노동자 집단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현상은 20세기 초까지의 디트로이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당시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붐은 산업혁명기 영국의 증기기관에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디트로이트에는 자고 나면 새로운 자동차 회사가 생겨났다. 수백 개의 자동차 회사가 난립해서 골목마다 하나씩 자동차 공장이 있을 정도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망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이 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동차 산업의 토대가 형성되어 20세기의 대표적 첨단산업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는 포드, GM, 다임러라이슬러 등 빅3의 성공 이면에는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용기있는 도전과 실패의 경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재 닷컴 버블론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물론 많은 닷컴 기업이 망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비즈니스가 몰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1세기를 대표할 인터넷 비즈니스가 바로 그 버블 속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증기기관이나 자동차 산업 이외에도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킨 위대한 버블의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전기가 최초로 상용화되던 1920년대 미국에서는 ‘전기’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그 회사의 주가가 폭등했다. 이처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새로운 문명은 예외 없이 대중들의 열광과 버블을 동반하며 발전해 왔다.

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소위 ‘닷컴 기업 버블론’은 소모적일 뿐 아니라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율산, 국제그룹 등 재벌기업이 망했을 때 경영자의 자질이나 정경유착에 대한 비난은 있었을지언정 재벌기업 거품론을 들어본 기억이 나에게는 없다. 그런데 개화하기 시작한 지 겨우 1년 남짓한 인터넷 기업들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버블 논쟁을 보며, 나는 낡은 패러다임에 안주하여 이익을 취해온 세력이 변화를 시기하여 펼치는 음모의 냄새마저 느낀다.

인터넷은 과거에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평등한 정보 접근 기회를 제공하면서 개인 생활과 사회질서를 바꾸어 가고 있다. 더욱이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나라가 세계의 주도적 위치로 나아갈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의 전문가들은 한국이 인터넷의 변화 속도에서 세계 최고이며, 실력은 미국에 이은 2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제 닷컴 기업이 버블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은 중단되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1년이란 짧은 준비를 거쳐 아시아 진출을 시작했고 세계를 무대로 한 사업을 구상하는 단계로 성장했다. 지금은 닷컴 기업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하며, 버블을 통해 준비된 인력과 노하우를 실패했다고 비난하는 대신 새로운 발전의 주역으로 통합시켜 나갈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는 데 힘을 모아야 할 시기다.

박창기(팍스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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